우거진 수리대 나무가 긴 띠를 이룬 선족이오롬
우거진 수리대 나무가 긴 띠를 이룬 선족이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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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선족이오롬

송당 남쪽 대나무가 많이 있는 지경의 뜻을 가진 오롬
선족이오롬 동남쪽으로 본 제주 들판의 전경.
선족이오롬 동남쪽으로 본 제주 들판의 전경.

웃선족이는 송당리 산140-2번지에 위치한 비자림로 상에 있다. 대천동에서 비자림로로 들어서는 곳은 한라산에서부터 발원한 천미천다리를 지나야 한다. 즉 천미천은 웃선족이오롬 남쪽자락을 끼고 불과 몇 백m 앞에 거슨세미오롬 4거리다. 왼쪽은 거슨세미 오롬이고 안돌·밧돌오롬으로 갈수 있고 사거리 반대쪽은 송당민오롬·이승만대통령 별장으로 나가는 길이다.

웃선족이는 해발 307.3m, 표고 32m, 알선족이는 해발 291m, 표고 21m에 지나지 않는다. 비자림로를 몇 차례 찾아 다녔으나 오롬을 찾을 수 없었다. 비자림로는 좌우로 삼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곳으로 한국에서 아름다운 길 1등으로 뽑힐 만큼 이름이 있는 곳이다. 필자는 번지 안에서 선족이오롬을 몇 차례 왕복하며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삼나무를 뚫고 철조망을 뚫고 가시덤불과 허리 위로 자란 고사리 숲을 지나니 눈 앞에 높지 않은 언덕이 보인다. 억새와 찔레가시에 베이고 찔리고 나서야 언덕 앞 벌초하러 지나간 발자국이 보여 따라갔다. 웃선족이를 오르며 송당에 사는 누이의 말이 생각난다. ‘한 해 봄, 고사리를 꺾어 송아지 한 마리를 산다던 이종누이의 얘기가 거짓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얼마큼 나가서 앞을 보니 기가 막힌다. ‘어떻게 길을 찾아야지?’가 아니라 ‘어떻게 길을 만들어야 하지?’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나마 영혼의 쉼터인 묘(墓)들로 길을 찾았다. 어쩌면 잠든 영혼들은 자기들의 지경을 침범하지 말라고 삼나무 숲, 철조망, 가시넝쿨로 첨병을 세워둔 것인가? 그래서 굳이 길을 내며 찾아 나선 길손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송당리에 사는 90넘은 이모님께 웃선족이, 알선족이가 무슨 뜻인가 물었다. “동네에서는 오래 전부터 선족이오롬에 씨를 뿌리고 밭을 매러 다니기도 했지, 정상 쪽에는 황새가 자라서 초가지붕을 덮으려고 황새를 베로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은 누구도 농사 짓는 사람이 없고 황새를 베로 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내버려서 황무지가 돼 버렸지.”

선족이오롬의 오래전에 불탄듯 보이는 죽은 나무 너머로 보이는 서북쪽 전경.
선족이오롬의 오래전에 불탄듯 보이는 죽은 나무 너머로 보이는 서북쪽 전경.

작은 봉우리 몇 개가 동서로 누었는데 그 중 높은 정상에 서니 주위에 오롬들이 환히 보인다. 남쪽으로는 비치미·성불오롬, 서쪽으로는 한라산·부대오롬·부소오롬·거문오롬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거친오롬·거슨세미·체오롬·안돌오롬·밧돌오롬, 동쪽으로는 도랑쉬오롬·높은오롬·동거문이오롬이 보인다. 높지 않으나 큰 나무들이 없기에 주위에 조망이 열린 듯하다.

웃선족이 동향의 굼부리에는 기둥만 남겨진 마른 나무들이 보인다. 아마도 불에 탄 것이라 생각 든다. 박정희 군부는 제주 생태를 무시하고 ‘나무를 심으라’ 명한다. 나무가 없으면 산사태 나는 반도(육지)의 상황과 다르다. 그러므로 제주의 주업인 목축을 못 하게 됐다. 나무를 심으며 농사와 목초지로 이용해 오롬들을 불모지로 만들어 버렸다.

웃선족이는 퀴카시(구지뽕)·들뽕·담팔수·도토리·말쿠시(고령근)·볼래(보리똥)·후박나무·구럼비· 예덕나무·자귀나무·팽나무들이 나무딸기·칡넝쿨·송악줄·모람·청미래·줄사철 넝쿨과 며누리밑씻게·의아리 줄기들이 엉켜졌고 절반 넘는 무덤들이 벌초도 되지 않아서 산발해 보기 흉하다. 억새·황새·고사리들이 동삼 눈바람에 죽고 새고사리가 솟아날 때 봄의 들꽃을 기대해 본다.

오롬 명칭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선족이라는 사람’이 오름 주위에 살았기 때문에 ‘선족이오름’이라고 하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평생을 웃송당에서 살아오신 90넘은 이모님께 물어봤다.

“혹시 웃송당과 대천동 사이에 마을이 있었나요?”, “없었지”, “그러면 4·3사건 때에 있던 마을이 소거된 건가요?”, “아니, 내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임자가 없는 땅이니 가만히 있지, 임자가 있으면 요즘 같은 세상에 개발했겠지, 그러니 공유지로 남아 있을 거야” 이제 확실하다. ‘선족이에 ’선족이가 살아서 선족이 오롬이다’는 말은 허구다. 그 지경에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도 없다.

한자로 ‘선족이(仙足伊)’는 ‘선죽이(先竹)’의 한자를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선(先)’은 송당 앞(남쪽)에 ‘대나무(죽竹)가 있는 지경’이란 말이다. 그리고 ‘죽’이 ‘족’으로 변음된 걸로 보인다. 이모님은 “거기에 대나무들이 많았다” 해서 조사해 보니 비자림로 서쪽에 접한 선족이만 봤는데 길 건너에 보니 거슨새미오롬 입구에서 대천동까지 2㎞쯤 길고 넓게 띠를 이룬 대나무 숲이 끝없다. 제주에서 이렇게 큰 대나무 숲은 본 적이 없다. 이제 선족이의 비밀을 찾았다.

비자림로를 따라서 보이는 수리대나무 숲.
비자림로를 따라서 보이는 수리대나무 숲.

선족이는 ‘송당마을 앞에 대나무들이 많이 있는 지경’이란 뜻이다. 그러나 비자림로 서쪽은 대나무가 없다. 삼나무 독성으로 다른 식물이 못 자라기 때문이다. 선족이 두 오롬 사이에 작은 평지가 마치 두 오롬의 굼부리처럼 보인다. 가운데 삼나무를 경계로 웃선족이, 알선족이로 나뉘고 알선족이는 제주시 동쪽 3읍면에서 가장 낮은 오롬이다.

한국에는 ‘죽산’이란 명칭이 많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경기도 안성의 옛 지명이 죽산이었고, 지금도 안성시에는 일죽면이 있다. 아산시 선장면 죽산리,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는 예전에 죽산면이었고 전남 해남의 옛 지명도 죽산, 경상도와 충청도 경계에는 죽령(대재)이라는 유명한 고개 길도 있다.

알선족이를 북서편 산이굴교 다리 너머 알선족이오롬 주위에는 겨울감자 밭이 오롬과 경계인데 수리대나무들이 누렇게 떠 죽고 있었다. 아마도 대나무에 제초제를 쳤음이 확실하다. 그렇게 대나무들은 점점 사라진다. 봄이 오면 고사리 벌판이다. 그리고 할미꽃·산자고·오랑캐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을 때 쯤 버려진 선족이의 봄을 기다려 본다.

가을 감자꽃 너머로 보이는 알선족리 오롬 전경.
가을 감자꽃 너머로 보이는 알선족리 오롬 전경.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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