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과 씨름 반세기 '옷의 달인'..."의복에 깃든 정신 지켜야"
재봉틀과 씨름 반세기 '옷의 달인'..."의복에 깃든 정신 지켜야"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2.12.11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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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12. 제주도 1호 명장 오운자 감수광 대표
끊임 없는 배움 열정...노동부 숙련기술자-산업현장 교수 지정
'한복 착용 실태와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
"일하면 시름도 고달픔도 사라져" 카르페 디엠-불광불급 관통
제주 전통의복은 정체성-경쟁력, 집중연구해 후세에 전하고파
'설문대할망 옷' 제작 프로젝트 준비...최다 인원 기네스북 도전

오운자 감수광 대표(68)는 말하자면 옷()의 달인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동안 의복과 동행해온 오 대표는 3년 전 고용노동부 우수 숙련기술자로 지정된 데 이어 최근 제주특별자치도 명장(한복 생산) 1호 타이틀을 획득했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 제1호 명장(한복 생산)으로 지정된 오운자 감수광 대표. 

오 대표는 서귀포시 강정 출신으로 21살 때 재봉틀과 인연을 맺었다. 그 시절 대부분 그랬듯이 5남매 중 맏이란 운명에 떠밀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계현장에 뛰어들었다.

오 대표는 아버지가 하던 건축사업이 망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어머니가 집안을 책임지게 됐고 맏딸로서 가장 아닌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남의 밭일을 도와 돈을 버는 방법이 가장 흔하고 쉬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제주시 광양로터리에 있는 한복학원 3개월 속성반을 다니며 의복에 입문한 그녀는 2년 동안 남의 한복가게 2곳을 돌며 시다(보조노동자)로 일하고 나서 직접 가게를 차렸다.

오 대표는 한창 때는 장사가 잘 됐다. 경조사나 명절 때면 사람들이 한복을 입던 시절이었다. 집에 결혼이 있으면 양가 부모에 신랑신부, 이모에 고모까지 7~8벌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러다가 1990~2000년대 들어 한복이 일상에서 멀어졌다고 설명했다.

반세기 옷과 씨름이론실기 겸비 달인

그녀는 바쁜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배움의 열정을 불살랐다.

오 대표는 1998년 한복기능사 2급을 취득하고 1997년 한복산업기사 자격증을 땄다. 고용노동부 우수 숙련기술자(2019)로 지정됐고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2017섬유 의복)가 됐다.

제주도 지정 1호 명장인 오운자 감수광 대표가 자신이 제작한 출토복식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오 대표는 제주토박이답게 한복뿐만 아니라 제주갈옷에도 조예가 깊다. 감물염 기능전승자였던 모친 고() 이인선씨에게서 2002년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끝에 2006년 감물염 기능전승교육이수자로 지정됐다. 감물염색 관련 디자인등록 8, 상표특허등록 1건도 보유하고 있다.

그녀는 학업에도 정진한 끝에 1998년 제주대 교육대학원에서 한복 착용 실태와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해 실기와 이론을 겸비하는 고지에 도달했다.

오 대표는 2017년 제9회 남북통일기원 한양예술대전 복식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고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 복식공예 분야에서 2018년 우수상2019년 대상2021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산업현장 교수로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참가자를 가르치고 제주도설문대여성문화센터 강사와 한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로도 활동해왔다. 2010년과 2011년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입상자 지도교사 은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같은 대회 금상을 차지하는 성과도 거뒀다. 대한민국 명장 선정 면접현지실사 심사위원, 기능경기대회 출제검토심사위원도 그녀의 이력이다.

오 대표는 요즘 (의복 제작)일은 10분의 1”이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한다고 강조했다.

한복의복 전시회도 명장 반열에 오르기까지 중요한 궤적이다. 그녀는 2016년 제주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마련한 개인전 천연염색 작품전을 비롯해 지난해만 해도 제주국제평화센터 전시회, 동아세아 국제전람회(도쿄), 동아시아 국제교류전시회 등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오 대표는 의상문화협회 하와이-마노아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공동 국제회의&전시회’(2002), 일 무형문화유산 국제심포지엄 및 문화교육활동(2018, 중국 운남민족대학교 박물관), 도쿄 동아시아 국제전람회(2022) 등에 출품하는 한편 아시아민족조형학회 회원(공예)으로서 학회 창립 20주년 기념전시회(2019)를 포함해 격년마다 열리는 전시에도 참가해 왔다.

오운자 감수광 대표가 영친왕의 출토복식을 재현한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최근 그녀는 의복 전문가로서 옛 무덤에서 나온 출토복식을 바느질 등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오 대표는 영친왕 일가와 방자여사, 덕혜옹주 등을 비롯해 대한민국 역사 속 선조들의 전통 의류나 승복 등을 만드는 작업을 다채롭게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누군가를 1시간 가르치려면 스스로 3시간을 배워야 한다는 그녀는 요즘도 출토복식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 광진문화원을 오가는 발품을 팔고 있다.

불광불급 철학의복에 깃든 정신 지켜야

오 대표의 인생철학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불광불급(不狂不及)’이 관통한다. 카르페 디엠은 라틴어로 현재를 즐겨라란 뜻이고 불광불급은 어떤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려면 미쳐야 한다는 의미다. 일에 중독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복은 천직이자 내 삶의 모든 것이라는 그녀는 지금까지 옷을 만들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여긴 적이 없다. 일을 하면 오히려 편안하다. 시름도, 고달픔도 사라진다고 피력했다.

오 대표는 과거 아침 8시에 재봉틀 앞에 앉으면 매일 새벽 2시까지 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정까지만 했다. ‘다들 자는 데 무슨 청승이냐고 놀려도 그냥 좋았다고 회고했다.

제주시 삼무공원 인근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마련한 한복연구소 작업실 벽면에는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오 대표는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온 도민들은 끈질기고 당찰 수밖에 없다제주인의 근성과 기질을 타고 난 것 같다며 웃었다.

오 대표는 제주 전통 의복과 관련해 최근 도내 향교와 삼성혈, 김만덕기념관 등을 방문해 각종 의례나 제례가 봉행되는 과정에서 착용하는 의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옷에는 사람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주만의 독특한 의류를 공부해 후세에 전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갈옷과 해녀 물소중이 등은 지금 봐도 매우 과학적이죠. 글로벌 세계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고유의 것은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정체성이고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전통 옷을 입지는 않더라도 알고는 있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정신은 지켜야겠죠.”

오운자 감수광 대표는 제주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전시관 개관에 맞춰 제주 창조여신인 설문대할망의 옷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 그녀는 설문대할망의 옷을 제작하는 비장의 작업을 귀띔했다.

설화 속 제주 창조여신인 설문대할망은 도민들에게 비단 100(1동은 50)을 모아 소중이(속옷)를 만들어주면 육지로 연결되는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으나 1동이 모자라 무산됐다.

내년 전후로 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전시관이 최종 개관할 때 설문대할망 옷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제가 바느질 총책임자입니다. 요즘 제주면적을 1만분의 1로 축소한 7m×4m 크기로 소중이 기본 틀을 만들고 있습니다. 향후 전시관에서 방문객들이 천 조각을 하나씩 붙여 옷을 짓게 됩니다. 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상징성을 담아내는 것이죠.”

설문대할망 옷은 최다 인원 참여 의복 제작기네스북 도전도 병행된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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