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 버린 날들의 가치
날아가 버린 날들의 가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0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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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파증불고(破甑不顧)라는 말이 있다. 

후한(後漢) 때 맹민(孟敏)이라는 사람이 시루를 지고 가다 땅에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지만 그는 태연히 갈 길을 갔다. 그 장면을 본 대학자였던 곽태(郭泰)가 의아해 물으니 “시루가 이미 깨졌는데 돌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지나간 일이나 바로잡아 회복할 수 없는 일에 미련을 두지 않고 깨끗이 단념한다’라는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난 일은 과감히 잊어야 한다. 만약 맹민이 깨진 시루에 집착해서 한탄하고 있었다면 곽태의 관심을 끌지도 못 했을 것이고 평생을 시루 장사나 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시대의 발전과 환경의 변화를 외면한 채 깨진 시루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쓴 스펜서 존슨은 ‘선물’이라는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현재의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지금이다”라고 했다. 어차피 인간에게 현실적인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니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은 오직 지금뿐이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닐까.

사실 누구도 실패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러기에 넘어진 것이 실패가 아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실패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실패라는 말에는 과거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일을 그르친 것을 붙들고 후회하고 한탄만 하다 보면 현재는 그 실패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발목을 붙들고 있을 뿐이다.

지금 넘어진 이들이 있다면 찰스 F. 키틀링의 말을 되새겨 보면 어떨까. “처음부터 잘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거듭되는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이정표다.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실패하면서 성공을 향해 나간다.” 

우리에게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문제는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 하는 것이다. 무언가 부족함이 있기에 실패한 것이라면 그 원인을 찾고 그것을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패한 사람 대부분이 원인을 찾는 방식이다. 논어(論語)에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고 소인은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라는 말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 자신을 책임에서 회피할 수 있다는 심리가 깔린 것이다.

깨어진 시루 파편을 붙들고 울고불고하기보다는 날아가 버린 날들이 좋았든 나빴든 나의 소중하고 고귀한 삶의 여정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시간에 충실히 하는 것이 삶이 아닐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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