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호랑이 만들기
없는 호랑이 만들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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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면요? 반신반의하겠지. 그럼 세 번째 사람이 와서 그 말을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세 사람이나 보았다는데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것은 위나라가 조나라에 패해 태자를 인질로 보낼 때 따라가기로 선택된 신하와 왕이 나눈 대화다.

신하는 세 사람이 말하니 없는 호랑이가 만들어지듯 자신을 참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그들의 말을 듣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왕은 걱정하지 말라며 신하를 보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왕은 곧 모함하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그의 충심을 의심했다. 그래서 그 신하는 조정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 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삼인성호’(三人成虎)는 세 사람이 짜고 호랑이를 만든다는 뜻으로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도 자꾸 말하면 사실로 믿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의 가짜뉴스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른 바 ‘탈진실(Post-Truth)시대’가 되었다. 대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쁜 소문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가짜뉴스는 그래서 더욱 날개가 튼튼해지는 것이다. 오죽하면 요즘 부패 비리에 연루된 사람까지 삼인성호를 들먹이겠나.

요즘 광화문에 모인 촛불을 보니 대통령 탄핵 시절이 떠오른다. 그 당시엔 거짓 호랑이들이 저잣거리에 많이 출몰했다. 더러는 믿고 더러는 반신반의하는 사이에 대통령은 탄핵되어 옥고를 치렀다.

탄핵의 광풍이 사라지고 5년여 세월이 흐른 지금 그 호랑이는 흔적조차 없다. 어디에도 없다. 실체가 없는 호랑이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없는 호랑이를 저잣거리에 풀어놓았던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물은 적이 있나? 광풍에 불을 붙였던 언론이 사과하고 반성이라도 하나? 부화뇌동했던 국민이 크게 자책감을 느끼기라도 하나?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잘못에는 추상과 같지만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구나’가 아니라 그럴만했으니 그랬겠지 할 것이다. 되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는 참 단순했고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 했다. 감정에만 치우쳤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 시절과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에서는 쥴리 호랑이, 얼마 전엔 청담동 술자리 호랑이가 날뛰더니 결국 없는 호랑이임이 드러났다. 호랑이를 만든 쪽은 거짓임이 드러나도 민망한 기색조차 없다. 국민은 속임의 대상일 뿐인가.

그런데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리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질러도 두 번 속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학습효과다.

그렇긴 해도 앞으로도 없는 호랑이 만들기는 아마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삼인성호를 통해 모함한 신하들도 나쁘지만 분별하지 못 한 왕도 어리석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화뇌동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곧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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