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소년들에게 바친 인생 국사책
해방 직후 소년들에게 바친 인생 국사책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2.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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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1946)

‘역사 앞에서’ 저자로 유명한 김성칠 선생 발간
민족 정체성 재구현 위한 ‘쉽게 쓰인 국사책’
‘조선역사’ 초판본(1946·사진 왼쪽)과 ‘역사 앞에서’(1993) 표지.
‘조선역사’ 초판본(1946·사진 왼쪽)과 ‘역사 앞에서’(1993) 표지.

요즘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지 책을 정리하시려는 분들의 문의 전화가 잦아졌다. 대부분 그런 경우 소장자의 장서가 있는 곳으로 직접 방문해서 그 규모와 내용을 확인한 후 인수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때로는 소장자가 아닌 중개인이 연락을 하는 상황도 있는 데, 그런 경우엔 책을 박스나 마대 자루에 담아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물론 소장자가 이미 포장 처리한 경우도 이런 ‘깜깜이’(또는 ‘묻지 마’) 상황에 해당하는 데, 이런 경우 인수가격을 산정하고 가격 협상을 하기가 어렵다. 내 입장에선 내용이 뭔지도 모르니 가격 산정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판매자 입장에선 당연히 더 높은 가격을 원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소장자의 내력에 대한 정보가 있을 경우 가격 산정과 인수 할지 말지를 정하기 훨씬 수월하다. 눈에는 안 보여도 그 내용이 얼추 짐작 가기에 만일 의미 있는 자료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면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 모험이 실패해서 느낄 낭패감보다 성공했을 때의 희열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적인 수익이 있고 없고의 문제라기보다 그대로 파지(破紙) 처리될 소중한 자료를 내 손으로 구했다는 기쁨과 그 안도감은 내가 헌책방을 생업으로 삼은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역사 앞에서’(1993)에 수록된 김성칠 선생.
‘역사 앞에서’(1993)에 수록된 김성칠 선생.

이 깜깜이 거래 방식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경매에서도 종종 있는 데 늘 참여하지는 않지만 어떤 느낌이 있는 책 무더기(?)가 있을 경우 때로 응찰하기도 한다. 그간의 성공률은 반반 정도로 업계 평균치(?)보다 낮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요즘은 감이 떨어졌는지 실패율이 높아서 한동안 망설이던 차였다. 그러다 최근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믿고 오랜만에 시도했다가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책 몇 권을 품을 수 있었다. 오늘은 그간의 숱한 실패를 논외로 하고 기쁨으로 다가온 책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 차례.
'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 차례.

그 책은 역사학자 김성칠(金聖七, 1913~19 51) 선생의 ‘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년 초판본이다. 1993년 초판이 발행된 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혀 온 ‘역사 앞에서-한 사학자의 6·25일기’(창작과비평사)의 지은이로 세상에 알려진 선생이 ‘오랫동안 그릇된 일본 교육으로’ ‘부지중에 아이들의 뇌수에 배인 자기모멸의 사상을 씨처버리고 우리 민족에 대한 자신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 그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인 국사책’이 바로 이 책이다.

머리말에서 선생은 ‘내가 그 그릇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함이 학문하는 태도에 있어 신중치 못함이 아닐까하고 주저’했다고 고백하셨지만, 이 책을 ‘읽고 또 읽어 외다시피’했다는 신경림 시인의 증언(‘역사 앞에서’ 서문)을 통해서 해방 직후 당시의 ‘일본말 책 대신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어서 자미(재미) 없어하는 소년들’에게 이 책은 선생이 언급했던 ‘초라한 선물’이 아닌 ‘인생 국사책’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책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던 젊은 저자와 그 책을 ‘읽고 또 읽어 외다시피’했던 늙은 애독자 사이의 세월을 초월한 고백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쓰기보다 읽기, 읽기보다 생각하기’를 실천하고자 했던 선생께 부끄럽기만 한 요즘이다.

'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 머리말.
'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 머리말.
'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 판권.
'조선역사'(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6) 판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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