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어도...' 부당 공권력 바로잡아야...4.3 위해 검사 된 듯"
"'죄 없어도...' 부당 공권력 바로잡아야...4.3 위해 검사 된 듯"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2.11.27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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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10] 4.3직권재심 수행 변진환 검사
사시 도전 6수 만에 합격 '늦깎이'... 선친 강조한 '仁者無敵' 가슴에 품고 살아
합동수행단 파견 결정된 후 4.3진상조사보고서 비롯 관련 자료 확보 4.3 공부
"희생자.유족 채록 사투리 의미 파악, 아무나 할 수 없어" 제주출신 숙명 같아
고향서 벌어진 비극 명예회복 역할에 보람 커..."최근 사법불신에는 성찰.반성"

지난 329일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43사건으로 약 3만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제주에서 벌어졌다. 피고인들은 죄가 없어도 군경에 연행돼 처벌받았다. 부모와 형제, 자매,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 직권재심으로 위법하고 부당한 국가공권력이 바로 잡히길 바란다.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

이날 43수형인에 대한 첫 직권재심에서 구형에 나선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하 합동수행단) 소속 변진환 검사(49사법연수원 38)는 재판부에 이 같이 요청했다.

제주지법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피고인 4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 출신인 변 검사에게 43 직권재심 수행은 숙명과도 같다. 70여 년 전 위법부당한 군사(일반 포함)재판으로 도민이 집단 학살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현장에서 43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 정서와 교감, 유족과의 소통 등이 남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 현판 옆에 선 제주 출신 변진환 검사.

 

늦깎이 검사, ‘인자무적가슴에 품어

변 검사는 서귀포시 서홍동 출신으로 제주사대부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인권변호사를 꿈꾸며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4학년 때 첫 응시에서 불합격하고 2년 뒤 1차 시험에 붙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낙방이 연속되던 중 세 번째로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2006, 드디어 48회 사시를 패스했다.

시험 도전 6수만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34살로 사법연수원에서도 최고령이었다.

이보다 앞서 변 검사는 30살 때 현역으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고 33살 땐 결혼했다. 아내는 고교 동창인 배소현씨로 둘은 재경동창회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변 검사는 시험 준비로 계속 입대를 연기하던 중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전 32사단 505여단에서 복무했다. 고시원 동기들은 군법무관으로 가는 군대를 일반 사병으로 다녀왔다“2005년 결혼하고 다음해 9월 아내가 첫 딸을 낳고 한 달 뒤 합격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의정부지검 초임검사를 시작으로 창원지검 진주지청, 울산지검, 수원지검 안양지청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근무했다. 변 검사는 그 동안 반부패부 2, 강력부 1, 형사부 3, 공판부 3건 등 대검 우수 업무사례에 9차례 선정됐고, 법무부장관 표창도 수상했다.

그의 부친은 중등교사 출신으로 유명 서예가였던 고() 변영탁 선생이다. 청석(靑石)이란 아호를 썼던 변영탁 선생은 영주연묵회를 창립하는 등 제주서단의 토대를 닦은 예술계의 어른으로 평가받는다. ‘폭풍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고() 변시지 화백과는 5촌 지간이다.

변 검사는 어릴 때부터 선친이 강조했던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유교사상을 중시했던 아버지는 늘 어질게 살라고 가르치셨다. 지금도 늘 따르려고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제주지법에서 열린 4‧3수형인에 대한 첫 직권재심에서 구형에 나선 변진환 검사.

 

아무나 못해” 43 직권재심은 내 운명

그는 서울중앙지검 소속이던 지난해 11월 합동수행단에 파견됐다 올해 2월 정식 발령 났다.

변 검사는 대검 공공형사부에 근무하던 동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합동수행단에 파견 나갈 확률이 50% 정도라고 했다개인적으로 가든 안 가든 상관없었지만 43을 이해할 수 있는 검사가 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제주 출신인 점이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합동수행단 파견이 결정된 변 검사는 43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직권재심 임무 완수를 위해 43의 본질을 알아야 했고 고향의 일이라 무게감이 더했다.

사실 43이라고 하면 대학생 때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을 읽은 게 전부였습니다.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입수해 2달에 걸쳐 완파했죠. 쉬는 날도 읽고 지하철에서도 봤습니다. 어느 정도 43이 다가왔습니다. 43직권재심이 시작된 후에도 43평화재단과 43연구소,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43 관련 자료를 확보해 독파했습니다. 검사가 직접 찾아와 43 자료를 묻고 요청하는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인지 관계자들도 협조적이었습니다.”

변 검사에게 43 직권재심 담당은 운명적이다.

그는 “43진상조사보고서 중 채록부분은 제주사투리로 돼 있다. 제주사람이 아니면 의미를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43직권재심 과정에서 고령의 생존희생자유족과도 자연스럽게 제주방언으로 소통하고 있다아무 검사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라며 활짝 웃었다.

변 검사는 하마터면 나이 제한에 걸릴 만큼 늦게 시험에 합격했다. 전국 검사 2000여 명 중 제주 출신은 20여 명인데 그 중에서 한창 일할 기수가 지금의 나라며 돌아보건대 43을 위해 검사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내게 43만큼 중요한 사안은 없다고 강조했다.

43 관련 자료 중 한자가 많은 점은 선친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아버지는 학교에서 국어한문을 가르치고 붓글씨를 쓰셨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한자를 접한 탓에 43 자료에 많이 등장하는 한자 흘림체도 남들보다 빨리 파악한다고 전했다.

최근 변진환 검사가 사무실에서 4‧3 직권재심 수행을 위한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다.

 

고향서 발생한 비극 명예회복에 역할 보람

합동수행단은 군법회의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희생자 2530명의 인적 사항을 일일이 확인하고 현장 조사와 고증을 거쳐 직권재심을 청구하고 있다. 2년 내 전원 청구가 목표다.1117일 기준으로 희생자 581명에 대한 재심(21)이 청구됐다.

그 중 521명에 대한 재심(19) 개시가 결정됐고, 490(18)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의 직권재심을 통한 무죄 판결 기록이 수립되고 있는 것이다.변 검사는 고향에서 발생한 현대사의 비극, 그 중에도 부당한 국가공권력에 희생된 도민들의 죄를 없애고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보람과 성취감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시보로 일할 당시 김희관 부장검사(훗날 검사장 지냄)가 자신의 검사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이웃끼리 다퉜죠. 둘 모두 전과자였는데 재물손괴, 주거침입, 폭행 등 온갖 갈등과 싸움이 얽힌 사건이었습니다. 둘을 화해시켜 고소를 취하하면 기소 유예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김 부장검사께 결재를 올렸습니다. 혹시나 전과자들을 엄벌해야지 뭐하는 거냐고 혼날 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부장검사께서 날 불러 칭찬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를 언급하시고는 변 시보가 둘 사이 분쟁을 근원적으로 해결했다고 격려했습니다. 화해시키고 더는 싸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변 검사는 검사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죄를 밝혀내고 화해시키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43 직권재심도 부당한 공권력에 희생된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만큼 결이 비슷하다“43 직권재심을 통해 43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의 사법 불신에 대한 의견도 내비쳤다.

사법 불신이 깊어져 정말 안타깝습니다. 사법제도는 국민 신뢰를 잃으면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수많은 판사와 검사, 경찰이 사법질서 확립을 위해 원칙을 지키며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검사로서 성찰과 반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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