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 구하려했던 높은 뜻 결코 잊지 않겠다”
“제주사람 구하려했던 높은 뜻 결코 잊지 않겠다”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2.11.27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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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탄압 저항 문상길…삶·죽음의 현장을 가다]
1948년 박진경 제주 11연대장 암살…손선호 하사와 총살형
4·3도민연대 등 경기도 사형 집행 현장 찾아가 진혼제 봉행
4·3도민연대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통일청년회는 26일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사형이 집행된 곳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수색기지 인근에서 진혼제를 봉행했다. 경기=고경호 기자
4·3도민연대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통일청년회는 26일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사형이 집행된 곳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수색기지 인근에서 진혼제를 봉행했다. 경기=고경호 기자

“애국애족 전사들이시여! 이곳에 모인 후손들은 임들이 구해주려 했던 제주사람들의 후손입니다. 이 나라와 제주사람들을 구하려했던 높은 뜻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 진혼제 제문)

제주4·3 발발 두 달 뒤인 1948년 6월 18일 오전 3시15분. 제주고 옛 터에 주둔한 국방경비대 제11연대에서 M1 소총 총격 소리가 울려퍼졌다. 날아간 탄환은 박진경 연대장의 목숨을 휘감아 앗아갔다.

박 연대장은 한 달 전인 5월 6일 11연대장으로 취임하면서 “폭동 진압을 위해서는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고대로 취임 40여일 만에 도민 6000여명을 체포했다.

‘강경진압’ 공로로 대령으로 승진한 박 연대장은 축하 피로연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와 저격당했다.

박 연대장을 피습한 군인은 문상길 중위(23), 손선호 하사(22), 양회천 이등상사(25), 강승규 일등중사(22), 신상우 일등중사(20), 황주복 하사(22), 김정도 하사(22), 배경용 하사(19), 이정우 하사 등 9명이다.

문상길 중위가 저격을 지시했고, 손선호 하사가 숙소로 들어가 총격했다. 이정우 하사를 제외한 8명이 체포됐다.

1948년 7월 12일 서울로 압송돼 법정에 선 문상길 중위는 “나는 새로 부임한 연대장이 무고한 주민을 탄압하며 30만 제주도민 모두 죽여서라도 진압하겠다는 발언에 암살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문상길 중위 등 8명은 “박진경은 옛 일본군 출신으로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탄압한 민족반역자였다”며 “행동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제주도민을 향한 무자비한 탄압이 사태를 악화시켰고, 오히려 대한민국 국방경비대의 위신을 저해했다고 피력했다. 특히 4·3의 도화선인 1946년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에 대해 “우익청년단 소행이었지만 이를 제주인민유격대 소행으로 몰고 간 사실이 저격의 주요 동기”라고도 진술했다.

결국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1948년 9월 23일 오후 3시35분 경기도 수색기지 붉은 산기슭에서 총살형이 집행됐다. 문상길 중위는 사형 집행 직전 “스물 세 살의 최후로 문상길은 갑니다. 여러분은 조선의 군대입니다. 마지막 바라건대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 미국의 지휘 하에 조선민족을 학살하는 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마지막 염원입니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어 전우의 총구 앞에 선 손선호 하사는 마지막으로 군가 ‘용진가’를 부른 후 “훌륭한 조선 군대가 되어 주십시오”라는 짤막한 한 마디에 이어 총소리와 함께 “오! 3000만 민족이여!”라는 탄식을 내뱉으며 숨을 거뒀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는 25일부터 27일까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통일청년회와 함께 불꽃처럼 살다 간 문상길 중위의 삶과 죽음의 현장을 찾아갔다.

순례 첫 날 지금은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문상길 중위의 생가 터와 인근 마을로 옮겨진 생가를 답사하고 둘째 날에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사형이 집행됐던 경기 제1여단 수색기지 야산을 찾아가 정성 들여 미리 준비한 제수와 술을 차려놓고 진혼제를 봉행했다.

4·3 당시 무고한 제주도민에 대한 학살을 죽음으로 막아 낸 이들에게 눈물 섞인 절규로 초혼문을 올렸고, 이제 제주의 후손들이 진상규명을 통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이룩해 낼 것을 제문을 통해 다짐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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