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수선화(水仙花)
제주 수선화(水仙花)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1.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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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끝없는 고독의 위를 날으는/애닯은 마음/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죽었다가 다시 살아/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으로 진행되는 김동명 작시, 김동진 작곡의 가곡 ‘수선화’의 시작 일부분이다.

요즈음 오름을 산책 하다보면 길가에 싹이 파랗게 피어나는 수선화의 싱싱한 잎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럴 적마다 가곡 수선화의 가사를 되뇌이면서 안으로 가락을 노래하기도 하면서 ‘죽었다가 다시 사는~’ 이라는 가사를 기억하곤 한다.

내가 대학을 입학한 3월은 대학가가 다양함이 가득하여 꽤나 붐볐다. 캠퍼스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건물을 중심으로 잔디가 깔려 있고 사람이 지나가도록 마련이 된 도로 밖에는 수선화가 아직 꽃을 내밀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수선화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데 한 여학생의 무리들이 수선화를 꺾으면서 그 꽃들을 들고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음악관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 꺾은 수선화의 꽃 냄새를 맡으면서 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조금은 쌀쌀한 캠퍼스에 아름다운 선을 그리면서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상큼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싱싱한 광경을 나도 경험하고 싶어 음악관에 있었던 나는 수선화가 있는 도로를 찾아 갔다. 그리고는 수선화의 꽃향기를 맡아 보았다.

그날 그 경험이 오늘까지 계속이 되고 있으며 나와 수선화에 대한 애정의 관계가 시작이 되었다.

수선화의 향기는 코 끝으로 수선화 가까이서 맡아야 향기를 알 수가 있다. 수선화의 향기는 오늘의 세계가 아닌 이상향의 세상에서 건너 온 선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이다. 야릇하면서 나를 포근하게 감싸는 향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향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면서도 야릇한 향기이다.

제주에서의 가을이 짙어진 11월 오후 나는 해마다 수선화가 피어나는 들을 알고 있었다. 수선화가 예쁘게 필 즈음에 차를 타고 그곳으로 간다. 한 해 전에 피었던 그 자리엔 정말이지 숨죽이면서 나를 만날 날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얼굴에 홍조를 띤 것 같은 모습을 한 부끄러운 듯 노란색의 귀여운 수선화가 반갑게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가사에 나타난 것과 같이 수선화는 봄이 지나면 완전히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언제 수선화가 있었냐는 듯이 말끔하게 자신의 존재를 감추어 버려 사람들은 죽었구나? 하고 여긴다. 그런데 또 다시 늦가을이 오면서 산과 들에 싱싱한 파란 잎 대가 메마른 땅의 지표면을 뚫고 얼굴을 내민다.

이제야 죽지 않고 수선화가 살았구나! 를 알게 되고 뭇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수선화와 나와 닮아 있음을 알고 수선화에 애착이 가고 더욱 아끼고 감탄하면서 사랑하지 않나 싶다.

드디어 수선화의 계절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생활을 할 때에 수선화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추사는 제주도에서 나는 수선화를 금잔옥대 또는 제주수선이라고 불렀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수선화를 귀하게 여기기 전 까지는 소와 말의 먹이로 사용되는 꽃에 불과했다. 그러기 때문에 제주의 수선화는 추사 김정희를 위한, 의한, 김정희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추사 김정희가 지은 수선화라는 시를 소개한다.

수선화/추사 김정희

한 점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에/냉철하고 영특함이 둘러있네/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푸른 바다 파란 하늘/한송이 환한 얼굴/신선의 인연 그득하여 끝내 베어 던져진 예사로운 너를/밝은 창 맑은 책상 사이에 두고/공양하노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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