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데이
핼러윈 데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1.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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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업 시인·공인중개사

얼마 전 이태원에서 축제 도중에 사상 초유의 압사 사고가 일어나서 전 국민의 애도 기간이 있었다. 거의 모든 국민이 핼러윈 데이가 뭔데 그래? 석가 탄생일이나 예수 탄생일 성탄절도 아니고 대한민국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축제에 인파가 그리도 밀집해서 압사 사고가 났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핼러윈의 유래를 찾아보면 기원전 2000년쯤 인도 유럽어족의 켈트족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켈트족 중에는 드루이드라는 제사장들이 존재하였는데 그들은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애니미즘이 발달해 있었다.

제사장 드루이드는 태양신을 섬기는 의식을 이끌었는데 켈트족의 가장 큰 축제로 10월 31일 밤에 벌어지는 삼하인 축제이다.

당시 켈트족은 10월 31일을 태양의 기운이 다하는 날이자 여름의 마지막 날로 11월 1일을 1년의 시작으로 생각을 했다.

켈트족은 10월 31일에서 11월 1일을 넘어가는 새해 첫 밤에 저승의 문이 열린다고 믿었다. 여름과 겨울에 속하지 않은 애매한 시간에 저승과 이승의 경계도 모호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켈트족은 이날 죽은 자들의 영혼이 이승에 내려와 산 사람의 육체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귀신처럼 분장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님으로써 혼령들을 놀라게 해 달아나게 했으며 삼하인 축제 날 귀신의 왕에게 인신 제사를 드리기도 했는데 처녀를 제물로 희생시키곤 했다. 

제물로 받은 처녀를 커다란 사람 모양의 입 속에 가둬놓고 불로 태우면서 사탄을 찬미하는 축제를 벌이고 태워진 인체의 기름으로 촛불을 만들어 호박 안에 넣고 불을 켜서 집 앞에 놓아두어 드루이드교의 일원이 된 것을 알리기도 했다.

이후 8세기 유럽에서 가톨릭교회가 11월 1일을 성인 대축일로 지정하면서 전날 밤 10월 31일에 사원 축제를 이어갔고 켈트와 가톨릭 신앙이 혼합된 형태로 발전한 축제는 이후 아일랜드 등 유럽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원주민 문화와 다시 융합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핼러윈 데이의 특징은 유령이나 괴물 등의 분장과 의상이다. 분장을 한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사탕과 간식을 내놓으라고 외치고 다닌다. 미국에서는 가면, 장식, 의상, 사탕 등 핼러윈 데이의 소비가 15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이처럼 핼러윈 데이는 애초에 한국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날이었지만 미국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한국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고 상업주의와 연결되면서 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15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압사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그 중에는 핼러윈의 뜻도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대중 속의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선진국의 대열에 우뚝 서 있는 우리 국민의 정서와 문화는 너무나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사고 능력과 자기 판단이 없는 대중 속의 분위기를 즐기려고 수많은 청소년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들의 텅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 줄 수 있단 말인가?

이유도 모르고 군중 대열에 참여했다가 이승과 저승의 선을 넘어버린 안타까운 젊은 영혼들에게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한 구절 보낸다.

“젊은이들에게 정형화된 성공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라고 설교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학교와 인생에서 가장 큰 동기 부여는 일과 학업의 즐거움, 그 성과에서 얻는 즐거움, 그리고 그 결과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그 누구도 우상으로 숭배해서는 안 된다.”

요즘, 기성세대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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