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못 할 최면술사
초대받지 못 할 최면술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1.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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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논설위원

몇 해 전 문자를 받았다. 금융기관이었다. 더 낮은 금리로 대환대출을 해줄 테니 은행을 바꿔보라는 문자였다.

대출과 투자정보를 준다는 전국의 팀장님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문자를 보내셔서 차단하기도 피곤하던 때쯤이었건만 ‘와우! 낮은 금리라니 마다할 까닭이 없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의 안내를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더 낮은 금리로 해당 은행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니 기분이 좋았다. 

상담원은 새로운 전화번호를 안내했고 해당 번호로 채팅앱에서 친구 추가를 한 후 채팅앱 대화를 통해 신용조회를 위한 각종 개인정보를 요청했다. 

‘시스템이…. 좀 번거롭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중하게 안내를 받고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진행을 하던 중 나는 현재 내 대출 금리가 몇 %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가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대출도 ‘상품’이니 가성비가 맞는지 비교를 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말을 건넸다. 상담원은 괜찮다는 반응으로 이후 채팅앱을 통해 연락해줄 것을 당부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를 끊었는데, 음…. 뭔가 이상한 느낌, 금리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좀 이상한데?’ 해당 은행의 대표전화로 문의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형식의 홍보는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쉬웠다. 분명 ‘보이스피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내는 이자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우리 애들 뭐라도 더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바람. ‘이런 감정을 파고드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정중하고 친절한 목소리의 달콤한 제안이 보이스피싱이었다니…. 차라리 최면 같았다. 조금만 더 빠져들었다면 위험했을 최면…. 씁쓸했다.

보이스피싱이 항상 이렇게 달콤한 건 아니다. 졸업 후 라면집을 열고 아버님과 함께 운영 중인 제자가 있다. 아직 젊은데 전공을 살려 사업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다. 종종 학교로 찾아와 만나곤 했는데 그날 따라 어두워 보여 사정을 물었다.

“어머님이 보이스피싱을 당하셔서요…. 경찰에 신고하느라고….”

일주일에 하루만 쉬면서 장사로 번 돈을 모두 입금해 놓는 통장에서 크게 잃어버렸단다. 제자의 친동생 핸드폰을 해킹해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고 위험을 알리며 서두르길 재촉하니 어머님도 무엇엔가 홀린 듯하셨다고….

자녀가 상할까 걱정했던 어머님, 내 탓은 아닐까 자책했을 동생, 노력의 결실을 일시에 잃어버린 제자와 아버님.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는 것인가? 단 한 통의 전화로 금전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이 온 가족을 불행에 빠뜨렸다.

이후 경찰에서 범인을 검거했다. 운 좋게도 피해금까지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며 제자는 안심했지만 큰 고통을 겪을 뻔했던 불안감은 한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지인은 아버님이 보이스피싱에 넘어가 인터넷 링크를 누르는 바람에 온 가족이 화들짝 놀랐지만 아버님께서 다행히 온라인 거래가 가능한 계좌를 개설해 놓지 않으셔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술을 활용하지 않았기에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다행인 ‘작은 소동’으로 잘 마무리되었다고.

피로하고 파편화된 개인이 늘어가는 요즘 보이스피싱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상식의 발동’, ‘신뢰하는 공동체’, ‘기술적 한계’와 같이 위에서 언급된, 혹은 그 외의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보이스피싱은 수많은 실패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고난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희생양을 찾아내 조종·핍박하고 그들의 재산을 수탈하려 하는가?

남의 불행을 탐하는 일도,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도, 똑같이 어렵다. 둘 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 노력을 거듭해야 하는 것이거늘 왜 굳이 삐뚤어진 방향으로 치닫는 것인가? 타인을 강제하고 구속하여 짜낸 고혈을 아무리 취한다고 한들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대, 그 누구의 인생에도 초대받지 못 할 교만한 최면술사여, 타인의 불행을 거름 삼아 맺힌 열매는 결국 불행을 품고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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