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인생의 런웨이에 서다"
"황혼, 인생의 런웨이에 서다"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2.11.02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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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7] 제주시니어모델 최고령 3인방
SMA 시니어모델협회 사회적협동조합 제주도지부
제주에서 전문적 트레이닝으로 시니어모델 발굴
SMA 시니어모델협회 사회적협동조합 제주도지부가 발굴한 최고령 시니어모델 3인방이 최근 협회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임종수씨와 김정섬씨, 최민지. 김나영 기자.

“노년기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화려한 조명 아래 제주 시니어들이 디자이너 의상을 걸친 채 런웨이에 당당한 걸음을 옮기며 재능을 꽃 피우고 있다.

제주에서 전문적 트레이닝으로 시니어모델을 발굴하고 있는 SMA 시니어모델협회 사회적협동조합 제주도지부(지부장 황용희)다.

본지는 협회가 발굴한 최고령 시니어모델 3인방 김정섬(82), 최민지(74), 임종수씨(77‧이하 기수 순)를 최근 협회에서 만났다.

이들 3인방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자신감이 노년을 행복하게 해준다”며 “나이와 상관 없이 다양하게 도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각기 다양한 이유로 제주에서 시작한 시니어모델 활동은 이들 3인방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주위에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멋쟁이라는 말을 들었던 맏언니 김정섬씨는 친구와 남편의 권유로 78세 때부터 시니어모델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나이도 많고 늘씬하거나 키가 크지 않다고 생각해 고민했지만 시니어모델을 접한 뒤 그간 해오던 취미생활을 모두 내려놓을 정도로 이곳에만 집중하게 됐다. 음악에 맞춰 워킹을 할 때는 정말 하늘에 올라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스스로의 몸을 관리하게 되는 점도 좋았다. 간암 수술을 두 번 거치고, 유방암 수술을 한번 거쳤지만 현재는 모델 일을 하면서 헬스와 수영으로 몸을 관리하고 있다. 3년 간 몸무게가 8kg 가량 감량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나이가 들수록 젊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몸이 지치지 않고 하루 일과에 생기가 돈다”며 “시니어모델은 내게 취미를 넘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국내ㆍ외 런웨이에 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자신이 평범하다가도 시니어모델 활동을 위해 메이크업을 받고 거울을 보면 ‘이렇게 내 자신이 변화될 수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낀다. 무대에 설 때 조명을 받으면 탤런트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짜릿함을 느낀다. 촬영 결과물을 보면 생각하지도 않은 내가 나타나 통쾌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빨간 장화를 신고 리어카를 끄는 ‘최고의 일꾼’에서 런웨이에 서는 순간 멋진 모델로 변신하는 최민지씨는 “제주에 내려온 지 20년이다. 신랑이 아파 내려 왔는데 17년을 간호하다가 돌아가셨다. 신랑이 아픈 동안 모든 취미를 접어야 했고 외출 대신 정원을 꾸미는 일만 했다. 그러다 몸에 마비가 왔다. 이를 치유하고자 집에서 색소폰도 불기 시작했고, 일도 계속하다보니 몸이 풀렸다”며 “일흔이 넘은 현재는 내 삶을 찾고자 계속해서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다 시니어모델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귀포에서 왕복 2시간씩 운전해 교육장을 찾고 있다. 좋은 동료와 선생님을 만날 생각에 매번 기대된다. 시니어모델은 나이가 들어서 곧은 자세와 스스로에게 당당함을 많이 심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스스로 탈바꿈해 번데기에서 나비가 된다는 느낌이다. 큰 무대에 섰을 때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박수소리가 날 때 환희를 느낀다. 자식들 키우고 모든 집안 대소사를 하다가 이제는 나를 위해 설 수 있고, 당당함을 표시할 수 있구나. 이렇게 멋 부려도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인들에게도 많이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노년일 수록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딱 맞는 취미를 갖게 되면 외로울 새 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협회에 가입해 초보 중급반을 다니고 있는 임종수씨는 “연일 엄마들이 그렇듯 자식을 위해 살았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나니 나도 나를 위해 무엇을 해봐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딸이 시니어모델을 제안해 들어가게 됐다”며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교육 받는 게 너무 재밌고, 행복하고, 수업이 기다려진다”며 “딸도 ‘엄마가 잘 할 줄 알았어’라며 격려해주고 있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가족도 ‘이런 걸 하려 그래’라는 분위기가 아니라 응원해줘서 마음이 즐겁다. 손녀도 제가 시니어모델을 한다는 소식에 ‘나중에 할머니처럼 살거야’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섬 언니 같은 선배들을 보면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롤모델로 삼고 있다”며 “입문 5개월 차로 아직 정식 무대에 서본적은 없지만 선배 기수의 수료식에서 선배들이 초급반인 우리도 한 번 무대에 서보라고 기회를 줬다. 가슴 벅차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무대에 내려온 뒤 선배들의 뜨거운 격려에 큰 기쁨을 맛봤다. 남들 앞에 서는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들 3인방은 향후 모델 활동에 있어 앞으로의 목표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감사하는 모습이었다.

김정섬씨는 “저는 현재로서는 욕심이 없다.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는 일이다. 앞으로도 사는 동안,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가는 순간을 감사하며 살 것”이라고 밝혔다.

최민지씨도 “목표는 없다”며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시간까지,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그때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임종수씨는 “시니어모델로 활동하며 자부심도 있고 보람도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곳에서 선후배 모델과 함께 호흡하며 봉사할 일이 있으면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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