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연극 외길 동행...강상훈‧정민자 부부
42년 연극 외길 동행...강상훈‧정민자 부부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2.10.26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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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6] 40년 이상 제주연극계 지킨 강상훈‧정민자 부부
20대 때 연극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의 연
'늙은 부부 이야기' 부부 2인극으로 100회 이상 공연
숱한 폐업 위기 속 소극장 30년 지켜 눈길
강상훈 극장 세이레 대표(왼쪽)과 정민자 제주연극협회장이 지난 25일 세이레아트센터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나영 기자.

“둘이 함께 42년간 연극이란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말수 적었던 남자와 요망진(야무진) 여자.

대학시절 연극을 통해 서로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동갑내기 남녀 연극인이 제주에서 40년이 넘는 연극 인생을 펼쳐오고 있다.

강상훈 극단 세이레 대표(61)와 정민자 제주연극협회 회장(61)이다.

이들이 자본 논리에 따라 소극장 문을 닫고 위치를 옮긴 것만 해도 다섯 번.

하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올해 극단과 소극장 운영 30주년을 맞았다.

최근 이들은 2인극 ‘먼데서 오는 여자’를 들고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연극을 향한 같은 시선, 사랑이 싹트다

강 대표에게 연기는 ‘치유’였다.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과묵한 가정에서 자란 강 대표는 학교에서 친구에게 말을 걸거나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

그가 달라진 계기는 1981년 대학 시절 한 선배 소개로 입단한 극단 이어도였다.

강 대표는 “연극을 하면서 말(대사)이 주어지고, 이를 듣는 대상자가 여럿이라는 상황을 접했고, 해냈을 때 짜릿함을 느꼈다. 이후 적극적으로 말하고,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대화의 궁핍을 연극으로 달랠 수 있었다.

반면 정민자 회장은 “어릴 적부터 목소리가 예쁘고 또랑또랑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무대에 서도 떨지 않고 당당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시절 친구들이랑 희곡 작품 이야기를 나누고 도서관에서 작품을 찾는 게 정 회장의 낙이었다.

강 대표는 “군대 첫 휴가 때 극단 이어도에서 정 회장을 보고 말 그대로 첫 눈에 반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의 연락처도, 집 주소도 몰랐던 그는 부대로 복귀한 후 매일 러브 레터를 써 정 회장이 속한 대학 학과 사무실에 보냈다. 봉투에는 ‘제주대학교 영문학과 정민자’라고 쓰여 있었다.

영문학과 학우들이 매일 편지가 오길 기다릴 정도였다.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남자를 만나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 회장의 기억이다.

어느 날 강 대표의 군대 선임이 ‘상훈이가 편지를 너무 기다린다’는 편지를 보냈고 정 회장을 포함한 극단 이어도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강 대표에게 편지를 썼다.

정 회장은 어느덧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게 됐다. 전역한 강 대표는 정 회장에게 데이트를 신청했고 연애로 이어졌다.

둘이 최초로 함께 선 무대는 강 대표가 제대하고 나서 제2회 KBS 연극제 제주예선전에 출전한 작품인 이현화의 ‘우리들끼리만의 한 번’이었다.

강 대표는 당시 ‘실수’를 또렷이 기억했다.

“제가 형사 역을 맡아 취조하는 과정에서 가정부 역이던 정 대표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때리는 장면에 대한 지도를 받지 않았던 상황에서 순식간에 손이 날아갔습니다. 정 회장은 순간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블랙아웃 상황을 맞은 것이었죠.”

젊은 두 사람의 연극 인생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공을 쌓아 오늘에 이르렀다.

1987년 결혼한 둘은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고 강용준 당시 극단 이어도 대표가 두 사람을 위해 호텔방을 예약해주기도 했다.

강 대표는 강용준씨의 자리를 이어 받아 극단 이어도 대표를 맡기도 했다.
 
▲숱한 폐업 위기 속 30년 간 지켜온 소극장

부부가 ‘세이레’란 이름을 걸고 소극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건 1992년이다.

작품 제작 이후 한두 번 공연으로 끝나는 아쉬움을 해소하고, 개발된 레퍼토리를 꾸준히 선보이기 위해서다.

강 대표는 앞서 “극단 이어도 대표를 맡을 당시 중앙로에서 포켓 소극장을 만들었다. 1992년 세이레 창단 뒤 같은 해 제주여상 길 건너 편 현대자동차 판매점 골목에 세이레의 첫 소극장인 자유무대(추후 세이레 소극장으로 이름 변경)를 지어 운영했다. 1997년 용담동 소재 한 중국집 지하 건물을 빌려 이전해 ‘김지하의 밥’과 문무병의 ‘들불’ 등을 무대에 올렸다”고 했다.

이후 연습공간을 웅변학원으로 옮겼다가 2007년 연동의 한 폐업공간을 극장화 했지만 태풍 ‘나리’가 내습할 당시 폭삭 무너지고 말았다. 2012년 찾은 서광로 공간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부부는 세이레 창단 후 어린이 연극 붐을 일으킨 후 제주 소재 작품 만들기로 확장했다.

2000년대 여성적 요소를 더해 자청비, 백주또 같은 여성신화부터 현대 여성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잇달아 내놨다.

세이레아트센터 내 상설 공연을 위해 제작한 위성신 대본의 늙은 노부부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2인극이다.

정 회장은 “보통 한 달을 공연하는데 호응이 좋고, 호흡도 맞아 계속 공연하게 됐다”며 “여럿이 와도, 사람이 없어도, 한 명이 와도 공연하다 보니 100회를 넘겼다”고 말했다.

최근 이들은 또 다른 2인극 ‘먼데서 오는 여자’를 들고 서울 공연을 마친 데 이어 내달부터 생애 첫 전국 순회공연에 나선다.

11월 8일부터 12월 8일까지 구미 소극장 공터다, 부산 공간소극장, 대구 소극장 한울림, 전주 아하 아트홀, 춘천 소극장 도모를 돌게 된다.

올해는 세이레 창단 30주년이다.

오는 12월 16일부터 31일까지 전국 5개(제주 포함) 공연단체가 세이레아트센터를 찾는다.

강 대표는 “세이레 둥지를 잃지 않고 외풍에 견디는 힘을 키워 누구나 따뜻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가고 싶다”며 “아비뇽에서 같은 작품으로 대를 이어 연기하는 배우를 봤다. 정민자씨와도 그렇게 함께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서로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동지로서도 계속해 쉬지 않고 작품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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