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짬뽕과 몬더그린 현상
빨간 짬뽕과 몬더그린 현상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2.10.26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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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은 국민음식 중 하나다. 자장(짜장)과 함께 누구나 즐기는 중화요리다.

어릴 땐 자장이 우세하다면 나이가 들수록 짬뽕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향이 크다. 짬뽕은 생각만 해도 군침 돌게 하는 국물의 얼큰함이 단연 이다. 당연히 해장에도 제격이다. 뜨거운 해물탕이나 해장국을 먹고 나서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안성맞춤이다.

중국 국수가 일본으로 건너가 찬폰이 되고, 한국으로 넘어와 짬뽕이 됐다고 한다. 일본의 원조는 최초 개항지의 이름이 붙은 나가사키 짬뽕이다. 1899년 나가사키 항구에는 중국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넘쳐났다.

당시 푸젠성 출신 중국 음식점 주인 천핑순이 나가사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문어와 새우, 자투리 고기와 양배추를 넣고 끓인 국수가 짬뽕의 시초다. 가성비 만점이던 국수는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푸젠성 말로 너 밥 먹었냐?’란 뜻의 +?’을 일본인들은 국수 이름으로 잘못 알고 찬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찬폰은 국물이 하얗다면 우리나라 짬뽕은 붉다. 그야말로 새빨간 국물과 함께 매워야 짬뽕이다. 한국이 세계 최강인 인스턴트 라면에서도 짬뽕은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최근 짬뽕이 제주를 넘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 11일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진행한 제주도교육청 2021 회계연도 결산심사에서 현지홍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은 짬뽕을 비롯해 순두부찌개와 김치볶음밥, 깍두기까지 도내 병설유치원에서 제공된 빨간 음식들이 담긴 급식판 사진 4장을 공개했다.

모두 매운 음식이다 보니 유치원생들이 먹기 어렵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현 의원은 5~6세 아이들이 먹는 음식이다. 4개 모두 서로 다른 병설유치원인 것을 감안하면 아이들이 급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현 의원은 학부모들에게서 제보를 받았는데 이런 급식이 나오는 걸 어떻게 아셨냐고 물어봤더니 어떤 날은 (아이가) 집에 와서 허겁지겁 먹는다. 계속 관찰해 보니 그런 날은 학교 급식 메뉴에 들어가 보면 꼭 매운 음식이 나왔다고 했다. 아이들이 밥을 못 먹고 있는 것이라며 유아들은 상대적으로 소화 기능이 떨어지고 저장 기능도 떨어진다. 그런데도 이 친구들에게 초등학생과 동일하게 급식을 제공하는 게 맞는지 걱정된다고 강조했다.

언론에 유치원 짬뽕 급식기사가 넘쳐났다. ‘시뻘건이란 자극적인 표현도 가미됐다.

유치원 매운 음식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교육부와 초등학교 등을 상대로 유치원이 원생에게 매운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진정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매운맛은 주관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라며 기각했다.

실제 학교 급식 현장에서도 영양교사들을 중심으로 반박이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메뉴 이름이 짬뽕이라서 중화요리 짬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학교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먹을 수 있는 정도로 매운맛과 염도를 조절하고, 유치원은 더 줄여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몬더그린 현상이란 게 있다. 짬뽕 등 빨간 음식은 맵다는 선입견이 시각 영역이라면 몬더그린은 청각적인 착각이라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노래 ‘The Bonny Earl of Murray(머레이의 잘 생긴 백작)’의 가사 중 앤 레이드 힘 온 더 그린(And Laid him on the green)’을 여러 차례 듣다 보면 앤 레이디 몬더그린(Mondergreen)’으로 들린다는 데서 유래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당시 발언으로 언론에 몬더그린 현상이 등장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MBC가 자막을 달아 보도했고 다른 언론들도 뒤따라 기사화에 나서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발리면이냐, ‘XX’인지, ‘이 사람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뭐가 진실인지 혼란스런 와중에 막장 3류 정치는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다. 여야 편을 나눠 짬뽕을 자장이라 우기고 팝송 ‘All by my self’(올 바이 마이 셀프)오빠 만세라고 왜곡하는 꼴이다. 진영과 이념에 따라 같은 말을 달리 듣는 정치적인 환청환각이 아닐 수 없다. 정치판만 보면 시쳇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는 시험에 들어야 하는 국민은 괴롭고 고달프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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