땐 굴뚝과 아니 땐 굴뚝
땐 굴뚝과 아니 땐 굴뚝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0.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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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친정집 마당 구석에 쌓인 나뭇잎을 쓸어 모아 불을 붙이니 낙엽 타는 냄새가 향기롭기는커녕 연기만 날 뿐이다. 바싹 마르지 않고 축축하게 젖은 낙엽이 섞여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효석 선생처럼 낙엽 타는 냄새에서 갓 볶아낸 코오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오피, 고색이 창연하다. 80여 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니 그 시절엔 커피를 그렇게 불렀나 보다.

2022년 가을은 어떤가? 낙엽을 태우면서 가을을 만끽하기는커녕 눈이 매울 뿐이다. 감성도 낭만도 느낄 수 없는 건 메말라 버린 내 탓인가. 어수선한 세상 탓인가. 나라 안에 온통 부패의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고 불신의 연기가 자욱한 느낌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의혹이 있을 때 흔히 인용되는 속담이다. 여기저기서 각종 비리 의혹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즘 자꾸만 그 속담이 생각난다. 왠지 줄기를 확 잡아당기면 흙 속에서 줄줄이 올라오는 고구마처럼 부패 고리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다. 내 생각만 그런가? 

정치인들이 관련되었다면 정치 탄압 또는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것이 뻔하다. 뭐 보복이라 치자. 그렇다 해도 국민 중에는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럼 폴폴 나오던 검은 연기는 뭐지? 흰 도화지 같은 양심을 가진 그분들 행적에 누가 감히 그렇게 조악한 흔적을 남겼다는 거지?

만약에 지금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들이 조사를 받는다면 어떤 광경이 벌어질까 궁금하다. 나는 한 번도 재판하는 모습을 구경한 적이 없다. 하지만 조사 과정이나 법정 공방의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상상해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너 굴뚝에 불 땠지? 불 땠지? 아닌데. 나 안 땠는데? 불을 안 땠다면 저 검은 연기는 뭐야? 연기 나는 정체를 내놔 봐. 아, 그 연기는 말이지, 저쪽에서 나를 어쩌고저쩌고…. 요즘 정치인들은 왠지 이럴 것 같지 않은가?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상상해본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사건의 본질은 본인들만이 알 것이고 설령 법정 공방이 벌어진다 해도 복잡한 변수가 널려있을 테니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어느 순간 낙엽에 불을 붙인 건 성냥이냐 라이터냐 하면서 사건의 본질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지, 연기의 유무와 정체를 알아낼지, 연기는 났으나 낙엽을 태웠을 뿐이라는 용두사미 결론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 참. 정의의 여신이 잠깐 조는 사이 저울추가 기울어져 버릴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명쾌하게 심판을 하더라도 한 쪽에서는 승복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정치 성향에 따라 진영 논리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냥 법에 따라 잘잘못을 가리면 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 따위는 관계없고 오직 우리 편에 유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만연하면 법의 잣대로도 땐 굴뚝과 아니 땐 굴뚝을 가려내는 일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솔로몬과 같이 훌륭한 판결을 해도 한 쪽에서는 잘못되었다고 할 것이고 이래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몰아붙일 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훌륭한 판결이란 결국 내 편, 내가 지지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이어야 될 뿐이다.

검수완박과 같은 제도적 장치도 결국 따지고 보면 진영 논리의 산물 아니겠는가. 최후의 보루인 법마저 이런 논리에 흔들린다면 그야말로 암흑과 혼돈의 미개한 나라가 되어버릴 것이다. 

법률적 잣대나 도덕적 잣대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하기를 소망한다. 내 편이라고 해서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자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깊어가는 가을, 한 때 뜨거운 여름의 햇빛을 저장하고 열정으로 반짝였던 꿈의 잔해들을 태우면서 누군가가 정치적 낙엽이 되어가는 과정을 떠올려보는 일은 심란하다. 낙엽을 태우면서 코오피 냄새를 맡든 커피 냄새를 맡든 평온한 일상을 꿈꾸는 게 나와 같은 서민들일 테니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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