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극을 하지' 묻는 여정 치열...'파친코' 대사 완성도 빛 발해
'왜 연극을 하지' 묻는 여정 치열...'파친코' 대사 완성도 빛 발해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2.10.24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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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5] 제주어 특화 연극인 변종수씨
연극인생 38년째 산전수전.공중전 모두 겪어, 돈키호테 이미지도
2018년 새로운 형식 연기 토크콘서트 시도..."연극은 생명과 같아"
각종 드라마.영화서 제주방언 연기 주목, 파친코 제작 2개월 동행
언어에 대한 애정 각별, 제주 차별성 확보 열쇠 "일상서 사용해야"
'파친코' 각본 및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수 휴(Soo Hugh)와 변종수씨. <변종수씨 제공>

 

먹돌도 똘람시민 궁기 난다.”

파친코에서 제주방언(제주어) 지도와 출연으로 주목받은 연극인 변종수씨(55)가 인생철학으로 삼는 제주속담이다. 단단한 돌도 끈기 있게 뚫으면 구멍이 난다는 뜻이다.

올해로 38년째 연극인으로 살고 있는 변씨는 시쳇말로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었다.

지금까지 그가 뛰어든 생업전선만 해도 손으로 셀 수 없이 많고, 마냥 좋아 시작한 연극도 끝을 보겠다고 30살이 넘어 대학에서 전공했다. 그러면서도 연극을 향한 열정은 한결 같았다.

그의 인생에는 먹돌에 구멍을 뚫고야 말겠다는 끈기와 인내가 관통한다.

변종수씨.

 

연극인생 38년째...“매너리즘에 빠지면 끝장

변씨는 1985년 국제대학교(옛 제주전문대학교) 재학 시절 동아리 노을극회를 통해 연극에 입문했다. 연극을 전문적으로 배우겠다는 결심이 서자 늦깎이 대학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34살에 서일대와 청주대에 차례로 입학해 연극영화과를 전공했다.

제주에서 예술을 통한 생계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그가 몸담았던 직업세계만 30개를 훌쩍 넘는다. 변씨는 고등학생 때 신문배달을 시작으로 용접, 택시운전, 지하수 굴착, 술차 주류 배달, 초콜릿 행상, 쌀 도정, 다방 우유 배달 등등 안 해 본 게 없다고 전했다.

꾸준히 무대에 서던 변씨는 2018년 연기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연기에 대한 소신과 철학, 배우의 매력, 예술의 중요성을 관객들에게 전파하고 공유하는 자리였다. 연기 토크 콘서트 형식 무대는 전국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알려졌다.

좋은 연기란 뭘까. 그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 연기는 기술로 하는 게 아니라 내면을 전달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 연극인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는 매너리즘에 빠지면 생명이 끝난다는 지론도 보태졌다.

그럼 연극은 뭘까. “연극은 생명이라는 변씨는 과거 친구와의 일화를 꺼냈다.

연극을 시작할 때 친구가 물었어요. 연극을 왜 하냐고. 그때 뭘 알겠어요. 책에서 배운 대로 뻔한 답을 했죠. 친구는 매년 물었고 이듬해에도 교과서 같은 답을 했죠. 3년째 친구가 다시 물었을 때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반문했죠. 연극이 과연 사회에 필요한지. 친구는 필요하다고 했고 그럼 누가 하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내가 해야지라고 했습니다. 그날 친구가 맥주 한잔 사더라고요. 술은 못 먹지만.(웃음)”

변씨는 이름을 건 배우훈련제작소를 10년간 운영했고 현재 문화놀이터 도채비 대표를 맡고 있다. “스무 살 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작품을 못 만들면 연극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곤 했다. 돌이켜 보면 망언이라며 너스레를 떤 그는 내 삶이 돼 버린 연극을 버릴 수 없다. 사명과 목표가 생겼다. 정말 좋은 연극예술을 만드는 것이다. 그 길을 계속 찾고 있다고 했다.

변씨의 연극인생의 책장에는 기성 틀에 맞서거나 기득권에 저항하는 돈키호테의 삶과 같은 페이지도 여럿이다. “멋진 말을 옮기는 게 아니라 항상 스스로에게 내가 왜 연극을 하지라는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종수씨.

 

제주어 연기배우에게 지도...“언어는 실제 써야

변씨에게 제주어는 예술의 든든한 밑천이자 삶의 소중한 가치이다.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과정에 소멸위기에 처한 제주어를 조명해 큰 주목을 받은 애플 제작 미국드라마 파친코에서 그의 제주어 특화 연기가 빛을 발했다. 각본 및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수 휴(Soo Hugh)를 비롯한 제작진이 제주방언 대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대본 작업부터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변씨가 전격 발탁됐다.

그는 파친코촬영이 진행되던 지난해 3~4월 캐나다로 가 대본작업에 참여하면서 배우 이민호정웅인에게 제주어를 지도했다. 그는 주인공 가족이 제주 출신인 만큼 제주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었다. 제주어를 지도하며 배우의 언어습관에 맞는 제주어를 입히는 데 주력했다미국 드라마에 제주어 연기가 나온 건 제주를 세계에 알리는 큰 기회라고 강조했다.

변씨는 상고 출신답게 극 중 정웅인이 주판을 놓는 연기와 내용의 허술함까지 바로잡았다.

그는 정웅인씨가 주판 놓는 법을 몰랐다. 주판알을 올리고 내릴 때 손가락의 움직임을 가르쳤다주판으로 계산하는 금액의 숫자가 두 자릿수인 점도 문제였다. 그건 암산으로 끝날 일이다. 머리 좋고 야쿠자의 재정을 담당하는 역할인데 이건 아니다 싶어 고쳤다고 전했다.

앞서 변씨는 인생은 아름다워멘도롱 또똣을 비롯해 계춘할망’, ‘가문잔치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 제작과정에서 배우들에게 제주어를 가르치면서 이목을 끌었다. 각종 제주어 말하기 대회에 출전하는 학생들에게 네이티브 발음을 교육하는 것은 그에게 소일거리와 같다. 최근 탐라문화제 제주어 대회에서 그가 가르친 오현중 학생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변씨는 제주어를 제대로 고르치난(가르치니까) 1등을 헙주마씨(하죠)”라며 웃었다.제주어에 대한 애정의 밑바탕에는 제주를 향한 사랑이 깔려있다.

창문을 열면 제주와 타 도시와 다른 게 보입니까. 신비의 섬, 환상의 섬이라고 하는데 뭐가 신비하고 환상적이라는 건가요. 예컨대 마리나호텔 인근에 제주 축소판을 만들고 그곳에서는 제주어만 쓰게 하면 어떨까요. 직원도 제주어 가능한 사람만 쓰고, 표준어를 쓰면 퇴출시키거나 벌금을 물리면 어떨까요. 정말 재밌지 않을까요. 제주속살을 체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주어를 거듭 언급하며 언어는 소멸되지 않도록 실제 써야 한다는 말도 반복됐다.

예술의 마철저(磨鐵杵·쇠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를 향한 변씨의 치열한 여정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파친코' 출연 배우들과 변종수씨.  <변종수씨 제공>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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