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명동거리에서
‘돌아온’ 명동거리에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0.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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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준 서울제주도민회 자문위원·논설위원

명동거리. 건물 유리창에 붙여진 ‘긴급임대’ 글자는 사라졌다.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있는 명동에 생기가 감돈다. 활기찬 얼굴들. 그 거리에 노점상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양말, 신발, 오징어구이, 버터구이, 주스, 떡볶이, 계란빵, 옥수수, 김밥, 어묵, 장난감.

점심 때여서 어묵을 먹었다. 수년 전 줄 서서 대기한 2층 칼국수집은 코로나 때문에 접었는지 찾을 수 없어 참 서운했다. 명동은 칼국수와 만두가 소문난 곳. 이날 외국인 가족들도 많이 보였다.

“아이구,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김밥가게 주인) 

“명동의 옛 시절,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어묵가게 주인). 

“오전 10시경에 나와 밤 11시까지 장사합니다.”(오징어구이 주인) 

“외국인들도 많이 보이고 정말 기분이 좋네요.”(젊은이)

서울시 중구 명동은 무교동, 다동, 태평로1가, 을지로 1·2가, 남대문로 1가, 삼각동, 수하동을 인접하고 있으니 수도의 심장부다. 명동의 상주인구는 1000여 명 정도다. 동서의 길이는 800m.

조선 시대에는 ‘남촌’이라 하여 보통 선비들이 모여 사는 주택 구실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거주자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상업지구로 변모해갔다. 주한중국대사관 주변에 중국식당이며 중국인 환전상이 북적인다.

명동은 조선의 천주교가 신앙종교로서 본격 발전한 곳이다. 명동하면 우선 명동성당이 떠오른다. 1970년대 민주화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성지다. 명동 한복판의 경찰지구대는 ‘관광경찰’을 자임하며 평화로운 명동을 상징한다.

명동 주변에
주한중국대사관과 명동성당을 제외한 순수 상가지역은 3.3㎢(1만여 평)이다. 전성기에는 일일 평균 100만 인파가 몰려들 정도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명소다. 근처에는 롯데, 신세계백화점, 롯데 영플라자, 중앙우체국이 있으니 이용에 보완성이다.

명동지하센터를 걷다 보면 저절로 남대문시장으로 들어간다.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은 이곳 시장에서 의류 등 여러 가지 물품을 사놓고 여유 시간에 명동 구경을 간다. 명동을 봤으니 내려가 자랑거리가 생긴 것이다.

3년 여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직격탄에 명동 상권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도 멈췄다. 명동대성당을 찾는 순례자나 신자들의 모습 정도일 뿐이다.

과거 명동은 음악과 낭만이 흐르고 영화·연극인의 생활공간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비 내리는 명동거리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사나이 두 뺨을 흠뻑 적시고 말없이 떠난 사람아(중략)…” 백영호의 작사·작곡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제주 홍보 효과
7년 전(2015) 제주특별자치도, 재외제주도민회총연합회, 서울제주도민회 공동으로 명동 입구에 간이 무대를 설치하고 서울명동거리 ‘제주 홍보 캠페인’ 행사를 가졌다.

주위에 저절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지사를 비롯해 임원들은 제주 삼다수와 제주 감귤을 무료로 배부하였다. 명동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면서 받았다. 

거리 한 쪽 공간에서는 제주 고유의 민속춤과 제주민요를 소개했다. 관객들은 이색 풍경에 큰 박수를 보냈다.

그렇다. 이제 말없이 떠난 사람들이 다시 명동거리에 나타났으면 한다. 명동거리에 활기가 넘치고 모두가 장사가 잘되면 우리의 경제도 활력을 되찾아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돌아온’ 명동거리를 떠나면서 성당 입구 성모상 앞에서 “어서 명동거리에 은총을 내려주소서” 기도해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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