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그리고 인생의 가을
억새, 그리고 인생의 가을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2.10.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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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세대 전, 30년이 더 지난 일이다. 그 때 우리나라는 대만을 (자유)중국으로 부르며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고,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하는 ‘베이징’은 외교관계가 없는 이른 바 적성(敵性)국가 ‘중공’이었다.

후배 기자 한 사람과 우리 정부에 ‘적성국가’ 방문 신청을 하고 ‘기업인’으로 신분을 위장해 홍콩을 거쳐 중국 베이징으로 들어가 천안문 광장을 방문했다.

그 해 1년 전.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를 외치며 피를 흘렸던 천안문 광장은 중국 공안의 이중삼중의 엄중한 경계로 숨이 막힐 듯했다. 그리고 이어서 여행의 진짜 목적지인 시인 윤동주의 고향.

가곡 ‘말달리는 선구자’의 배경, 일송정과 해란강이 있는 곳. 동북의 지린성 용정시로 날아갔다.

▲거기 용정중학교 윤동주 기념관에서 그의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처음 알았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27세 나이로 요절한 그가 ‘인생의 가을날’을 노래한 글을 보면서 가슴이 시렸다. 만약 그가 살았다면, 그리고 가을을 맞았다면 삶이 어땠을까. 아마 쏟아지는 햇살에도 가슴은 허허롭고 시린 가을 날 같은 삶,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삶이 아닐까.

내 나이도 가을이 됐다. 제주시 전농로 가로수가 가지를 드러내듯이 어느 덧 마주한 인생의 가을에 지난 일을 돌이켜보는 일도 많아졌다.

왜 나는 그 때 그렇게 화를 냈고, 그렇게 괴로워했으며, 가슴 아파했는가.

괴롭고 아픈 추억들이 모두 아름답게만 여겨진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흘러 보내버린 일상들도 참 고귀한 열정의 시간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 세상의 풍파 속에 소중한 인연을 맺은 지인들도 모두가 아름답고, 고맙고, 귀한 사람들이다.

▲주말에 전화를 받았더니 “이 좋은 가을 날에 집에서 눌러앉아 뭐하냐”고 한다. 이시돌 목장 가는 길 오른편에 억새가 달빛보다 더 하얗게 피어났다는 소식도 덧붙인다.

가을 억새는 10~11월에 절정을 이룬다. 설악에서 남향해 오는 단풍이 이 섬에서 화려함을 뽐내기 시작하면, 제주도 억새는 무채색으로 북향하기 시작한다. 올해도 그 남북향 만남이 곧 벌어질 것이다.

억새라는 이름은 ‘억센 풀’에서 왔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눕고 지나가면 일어서고 ‘망아지 혼’처럼 은빛으로 서 있는 모습들이 절대로 억세보이지 않은 데 그렇게 억세다고들 한다.

하기야 그리움도 한데 모이면 억세진다고 하니까. 그럴만도 한데, 억새 꽃은 사실은 꽃이 아니다. 씨앗을 날려보내기 위해 달아논 하얀 날개다. 잎과 줄기가 부딪쳐 서걱대는 소리를 내는 것은 가을이 다 됐다는 말이다.

▲30년 한 세대 전 일을 추억하면 우리 삶의 질서도 거스를 수 없음을 안다.

가을을 보내고 나면 지나온 삶을 정리해야 할 겨울을 만나게 되겠지. 그래서 남은 계절과 시간이 애틋하고 더욱 소중하다.

다음 주말엔 ‘억새 힐링’을 가야겠다. 올해도 억새 인파가 몰리는 통에 ‘힐링’하러갔다가 ‘킬링’된다는 우스개가 나오고 있단다. 전문가들은 남보다 약간 일찍 가거나 늦게 갈 것을 권한다.

오름과 오름 사이로 올라가다보면 보이는 건 하늘과 발 아래 굽이치는 억새 들판. 저멀리 그림자를 떨구는 한라산 뿐이겠지. 시야는 탁 트여 있고 공기는 맑다. 깃발처럼 나부끼는 억새밭 사이를 걸으며 바람소리도 듣고, 어디론가 돌아가는 새와 멀리 반짝이는 바다도 바라보면 잠시나마 고단한 심신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그 알 수 없는 힘에 가슴속 상처가 치유될 지도 모르고.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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