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들’
‘인연(因緣)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0.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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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사람들은 누구나가 인연을 안고 살아간다. 좋은 인연, 잘못된 인연 등 갖가지의 인연들은 나 자신과 밀접하게 연계 지으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관계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중요시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인연은 대학 1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입학을 한 늦깎이 학생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후에 진학을 한지 2개월이 지난 어느날, 교양 국어 시간이었다. 담당 교수님이 어느 때와는 다르게 본문을 낭독할 학생을 찾는 것이었다. 본문을 보니 4페이지 분량으로 어려운 한문이 빼곡히 쓰여 있었고, 고어(古語)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교수님은 여러차례 읽을 학생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교수님은 “낭독할 학생이 없단 말인가?”하며 실망하셨다. 나는 그제서야 손을 들고 “제가 읽어보겠습니다”하고 얘기를 하고는 낭독을 했다.

막힘없이 4페이지 분량을 쭉 읽어 내려갔다. 그 중에는 아래 아(·)가 여러 군데가 있었으나 제주사람으로는 충분히 소화가 되는 것이었기에 무난하게 낭독을 마쳤다. 교수님께서 낭독을 마친 저를 빤히 바라다보면서 “자네는 유학을 왔는가?”하고 물으셨다. “예”하고 대답을 했다. 뒤를 이어 전체 학생들을 향해서 말씀을 하신다. “조금 전에 학생이 읽는 것을 잘 들으셨을 겁니다. 아직도 제주에서는 아래 아(·)를 사용하고 있음을 아셨을 겁니다.” 

아직은 학생들과 서먹한 관계였고 학생들과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을 통해서 모든 학생들이 내가 제주에서 온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글을 읽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시간이 끝나고 나는 한 학기 후에 군에 갔다. 3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했는데 아직도 1학년 2학기였다. 정신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찌어찌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이 됐다. 입학서부터 장학생이던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4학년 때에는 등록금을 내어야 하는 평범한 학생 신분이 됐다. 아마도 기악과에서 작곡과로 과를 바꾸게 되니 학점을 잘 받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등록 마감일이 한참 지난 3월 말이 돼서야 대학으로 돌아갔다. 이미 등록 마감은 끝이 났다는 것을 알고는 학교의 서무과로 올라가서 서무과 과장님을 만났다. 이제야 등록을 하려 한다니까 모든 등록절차가 끝나 더 이상은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사정사정을 하니 교무처장님께 가 보라고 하신다. 교무처장님을 만나 뵙고 겨우 등록이 됐다. 교무처장님은 1학년 때 써클의 지도교수였다. 이것도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작곡과 담당 교수님을 뵈러 연구실을 찾아갔다. 교수님께서는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학생처장께서 자네를 기다리시니 처장실로 찾아뵈라고 하신다. 무슨 영문이지도 모른 채 곧바로 학생처장실로 향했다. 학생처장님은 1학년 시절 교양 국어를 담당 하신 교수로 한자와 고어가 가득한 글을 낭독하라고 한 적이 있는 바로 그 분이었다. 등록금을 내느라 늦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교수님은 바로 서무과로 전화를 해 등록금을 반환해 달라는 얘기를 하신다. 이 학생은 장학 혜택을 받는 학생이라는 것이다.

사실 학생처장님은 내가 1학년 때 경험한 국어 시간에 낭독한 일을 기억하고 계셨는데, 그 후로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2, 3학년을 마치는 등 많은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그 일을 기억해서 대학교의 편집국장직을 수행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네를 기다린다고 편집국 일을 많이 지체했는데 바로 시작하라는 말씀이었다. 그 후로 2학기도 장학금을 받아서 대학은 등록금을 내지 않고 졸업을 할 수가 있었다.  

위와 같은 ‘인연’의 관계는 다른 모습으로 숱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다양하게 다가오는 ‘인연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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