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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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10.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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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동국대 영상대학원 부교수

지난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게임 기획자 제이슨 M.앨런이 미드저니(Midjourney)로 만든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이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차지해서 화제다. 중세 유럽풍의 공간에 행성 이미지를 더해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표현한 그림이다.

문제는 이 작품이 작가가 그린 게 아니라 몇 개의 텍스트를 입력하여 생성시킨 AI의 창작품이라는 것이다. 로봇의 영역에서 불가침으로 알려졌던 예술창작의 세계를 AI 기술이 단숨에 인간들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나 우려와 관계없이 AI 기반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들이 생성한 작품들로 ‘AI 만화’, ‘웹툰’들이 잇따라 출간·판매되고 대중은 손쉽게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이라면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릴 창작을 AI가 수 초 만에 해내는 효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미술, 건축, 만화, 출판 등 창작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필자의 스승 유현목 감독은 AI와 로봇의 역할, 대체될 직업에 대한 우려를 30여 년 전에 필자에게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대부분의 기술은 로봇으로 대체된다. 예술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의 경우 배우, 작가, 촬영 등 기술진 모두 대체된다. 단 감독은 대체가 어렵다. 기술은 대체되지만 그 기술이 낳은 작품에 대한 미학적 판단은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과연 말씀대로일까? 현재의 기술로만 말한다면 첫째 배우, 대체 가능하다. 대체 가능하지만 좀 미묘한 지점이 있다. ‘실제 사람과 닮았다, 거의 똑같다’만으로는 스타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팬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나 작품에 대한 몰입을 위해서는 배우에 대한 대중적 취향과 판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 수준은 ‘불쾌한 골짜기’의 경계선에 있다.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불쾌한 골짜기’ 이론은 인간이 로봇 등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도도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대체로 85~95% 유사도가 발생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그 수준을 넘어서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인간과 많이 닮았다면 호감도는 다시 급상승한다. 그렇다고 대중의 판타지를 채워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둘째 작가, 즉 시나리오인데 대체 가능하다고 보는 편이다. 셋째 촬영 등 기술진 역시 대체로 대체 가능하다고 본다. 감독도 이 범주 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게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럼에도 미학적 판단자라는 유현목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영화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위의 가능성과는 좀 다른 방향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창작할 수 있는 시대라 기술 가격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 예술가 몸값은 배로 높아지는 추세이다. 왜 그럴까?

최근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많이 하는 사업 중에 LED 가상배경에서 촬영하는 버추얼 스튜디오가 있다. 현지 로케이션에서 촬영하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모든 촬영을 끝내는 방식이다.

디지털 기술의 총합인 이곳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변하지 않는 진실, 사실(Reality)의 구현 능력이다. 구현 자체는 디지털 기술로 하지만 사실 구현의 방향성과 미학적 판단은 사람이 한다. 그 사람의 눈과 생각이 작품의 질을 결정하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단순 기술자가 아니라 전문가, 예술가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사업의 중심이고 결과물의 중추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기술 가격이 아니라 전문가 가격, 예술가 가격이 플러스알파로 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기술자는 저렴한 노동자가 되고 창작자, 예술가가 고급 노동자로 전환되는 셈이다. 

AI로 발전하는 디지털 세계 속, 변화 속,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AI가 현재처럼 창작자의 보조·도우미 상태로 계속 남아있을 때 얘기다. AI가 독립된 예술가가 되는 순간 우리 모두는 그의 값싼 노동자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어느 미래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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