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4현과 5현 그리고 귤림서원
제주의 4현과 5현 그리고 귤림서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9.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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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이사

제주에서는 교학을 앞장서 펼친 인물로 4현과 5현이 회자된다. 5현이 비교적 짧은 기간 제주에 머물렀던 점에 비해, 4현(한천·김만희·이미·강영)은 김만희를 제외하곤 모두가 제주에 정착하여 후손을 남겼다. 

청주한씨 입도조 한천은 불사이군으로 1392년 제주에 유배되어 가족과 함께 표선면 가시리에 정착하였다. 한천이 고려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학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동네가 형성되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가시리 설오름에 묻힌 한천과 그 후손들이 잠든 청주한씨 방묘는 고려 말, 조선 초기 방형석곽묘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제주도기념물(제60-2호)로 지정되었다. 

애월읍 곽지리 과오름 곽남밭(郭南田) 지경에는 김해김씨 좌정승공파 입도조 김만희를 기리는 비문을 비롯한 훈학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 조정에서 도첨의 좌정승을 지낸 김만희는 80세가 넘은 나이인 1393년 제주에 유배되었다. 송례헌(松禮軒)이란 초가를 지어 주경야독하며 훈학한 김만희는 11년 만에 해배되어 황해도로 귀향하나 손자 김예가 남아 가정을 꾸려 이곳에 정착하였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제현의 증손 이미는 1401년 교리(校理) 벼슬을 제안받으나 거절하자 제주향리로 좌천 유배되었다. 이미의 형 이신이 목사 겸 도안무사로 자원하여 제주에 와서는 동생에게 귀경할 것을 몇 회 설득하지만, 동생의 의지를 꺾지 못해 혼자 귀경하였다. 경주이씨 익재공파 입도조인 이미는 도두동에서 훈학에 힘써 주위의 추앙을 받았으며 한라산 지경에 묻혔다 전한다. 

신천강씨 입도조 강영은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와 사촌 간이다. 2차 왕자의 난 이후 1402년 함덕 포구로 입도한 강영은 제주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신천강씨 제주도종친회에서는 입도조 강영이 연좌제에 의해 역신으로 몰려 죽음 직전에 신분을 속이고 제주에 피신해왔다 전한다. 강영은 고려 말 최영 장군과 함께 왜구를 물리친 고려의 공신이기도 하다. 

4현에 비해 제주에 널리 알려진 5현은 사액서원인 귤림서원에 모셨던 현인들이다. 사액(賜額)서원이 되려면 사재(祠齋), 즉 사당과 공부방인 재실을 갖추어야 한다. 기묘사화로 제주에 유배와 사사된 충암 김정의 사당을 1578년 조인후 판관이 가락천 동쪽에 세웠다. 그런 후 1659년 명도암 김진용의 건의로 이괴 목사가 한성판윤을 지낸 고득종의 집터에 공부방인 장수당(藏修堂)을 지었다. 사재인 충암사당과 장수당이 들어서니 드디어 제주 최초의 (귤림)서원이 1682년 문을 열 수 있었다.

귤림서원 사당에는 충암 김정을 시작으로 규암 송인수 목사·청음 김상헌 안무어사·유배객 동계 정온, 후에 우암 송시열도 모셔졌다. 5현이 제주에 머문 기간은 송시열과 송인수 3개월, 김상헌 4개월, 김정 1년 2개월, 정온 8년 6개월이다.

그러나 귤림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다. 폐원된 귤림서원 경내에서 1892년 제주 유생 김희정 등이 오현의 위패로 조두석(俎豆石) 5개를 마련하여 춘추로 제사를 지내니 오현단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해방 후 이곳에선 1946년 오현중학교가, 1951년 오현고등학교가 개교한다. 오현단은 1971년 도지방문화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고 제주시는 2000년 들어 오현단 경내에 사당·장수당·항현사·협문 등 귤림서원 일부를 복원한다. 

제주에 유배와 입도조가 된 제주 4현과 귤림서원에 배향된 제주 5현, 그들 모두가 제주 선인을 위한 교학과 문화에 기여한 인물인진 의문이다. 당시의 집권세력이나 당파의 이익에 의해 5현으로 선정되기도 했기에. 그럼에도 그들이 애민사상을 몸소 실현한 인물이라면 그 또한 우리의 현인이기에 그들의 삶에서 교훈은 배울 수 있을 게다. 그러한 마음으로 최근 비영리 민간단체인 ‘귤림서원’이 탄생되기도 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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