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의 장례식과 다이아몬드
영국 여왕의 장례식과 다이아몬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9.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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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칼럼니스트

지난 19일 진행된 영국 여왕의 장례식. 70년의 재위 기간을 뒤로하고 10일간의 추모기간을 끝으로 역사 속의 인물로 기록됐다. 장례식 참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논란이 일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여왕은 자신의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64년의 재위 기관을 넘고 루이 14세의 72년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70년이라는 시간을 현대사회의 모든 역사 속에 있던 인물이다. 굳이 재위 기간을 이야기하자면 조선 시대의 영조가 52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78년이라고 하니 역대급인 것은 사실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여왕이었으니 아직도 많은 영연방 국가의 공식적인 국왕이었던 그녀의 장례식 중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여왕의 관 위에 놓였던 왕관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왕관에 장식되어 있는 ‘컬리넌 다이아몬드’에 눈길이 갔다.

해가 지지 않던 나라의 최고 통치자의 왕관이었으니 다양한 장식이 되어있지만 사람 심장과 크기가 비슷한 세계 최대 크기였던 컬리넌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다. 1907년 영국 국왕의 생일에 맞춰 남아공 정부가 선물한 이 다이아몬드 원석은 여러 조각으로 세공되어 왕관과 왕권을 상징하는 지팡이에 장식하는 등 최고 권력의 상징물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남아공 주민 6000여 명이 이를 남아공 박물관에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다이아몬드가 가장 값비싼 보석이라는 사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마는 이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결국 생각은 ‘피의 다이아몬드’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연상이 된다. 다이아몬드는 결혼예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보석으로 인기가 높지만 다이아몬드의 공급 체인은 예상대로 유럽 국가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주산지는 아프리카다. 

이로 인해 다이아몬드 원석은 아프리카 정부에는 엄청난 재정적 도움이 되기에 이를 둘러싼 이권 다툼이 정권의 안위를 뒤흔들고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봐야 했던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멀지 않은 1990년대 아프리카의 시에라레온에서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정부군과 반군은 치열한 내전을 벌였다. 이들은 전쟁비용 마련을 위해 점령지의 다이아몬드를 판매해 비용을 충당했다. 이 와중에 반군은 수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는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는데 강제노동은 물론 소년병 투입, 주민들의 손발 절단을 통한 공포 전술로 악명을 높였다. 당시 반군에 의해 손발이 절단된 피해자들이 수십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을 잘 알면서도 유럽의 다이아몬드 카르텔들은 이들의 원석을 계속해서 매입했고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다이아몬드를 요구했다. 이들에게 제공된 자금은 결국 무기 자금과 아이들의 손발을 자르는 결과를 자아냈다. 이 때문에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이후 ‘Blood diamond’라는 책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2006년에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동명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자 시에라리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쟁 지역의 다이아몬드 거래를 금지하는 ‘킴벌리 프로세스’가 UN에 의해 발효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리카의 저임금 노동과 아동노동, 강제노동에 의해 다이아몬드가 공급되고 있다.

수많은 커플들이 아직도 결혼예물을 비롯해 가장 귀중한 순간을 위해 다이아몬드가 들어간 보석제품을 주고받는다. 가장 뜻깊은 순간을 상징하고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이기도 한 광물이기에 더 많은 인간의 피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 여왕의 죽음을 계기로 잊혔던 다이아몬드 생태계의 한 단면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권력과 사람들의 피는 어떤 이유로든 연관관계를 멀리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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