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종과 공감력
정치 실종과 공감력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9.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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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 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

#장면 1.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침수로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 반지하의 창문을 바라보며,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통령의 사진을 쓴 카드뉴스.

#장면 2.
최근 제1야당의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유력 후보가 정견발표 연설을 했다. 그 연설문의 첫 문장. “정당은 정권 획득을 위해 존재하고, 정당의 목표는 선거 승리입니다.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첫 번째 장면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여러 언론에서 많이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의 참사의 현장을 정책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대통령 등 이른 바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지칭되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공감력의 부족이다.

여기에 수해 복구 활동에 참여하여 사진 잘 나오게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어느 국회의원의 말은 덧붙이지 않겠다.

두 번째 장면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당연히 자당의 당원을 향한 연설이기는 하나 정당의 존재 가치를 ‘승리’에 전적으로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리는 51대 49로도 가능하다. 내가 아닌 다른 편보다 1이라도 더 갖게 된다면 가능한 것이 승리이고, 정권 획득이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다른 편의 49는 그저 패배한 존재로 놔두어야 하는가? 우리 편의 승리만을 말한다면 다른 편의 패배에 따른 ‘아픔과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공감력 부족은 여전하다.

정치는 이해하고 타협하고, 존중하면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일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이며, ‘타협’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한다는 것’이다. 특히 ‘존중’은 ‘상대를 높여 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정치를 설명하는 ‘이해’, ‘타협’, ‘존중’. 이 모든 단어에 포함된 것은 바로 ‘나’ 아닌 ‘너’이다. 바로 나 말고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고, 그 상대방을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만큼 생각하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심화되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공정이라는 탈을 쓴 능력주의에 기반한 각자도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함께 버텨보자는 ‘연대’와 ‘협력’의 힘이다. 
그 ‘연대’와 ‘협력’에 함께 힘을 합치자고 먼저 나서야 할 존재인 정치에 ‘공감’이 사라졌다. 이러한 정치 기능의 상실로, 우리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고,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 또한 사라져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의 사상가인 막스베버는 정치인이 지녀야 할 자질로, ‘열정’,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제시했다. 여기서 자질(資質)의 사전적 정의는 ‘타고난 성품이나 소질’이다.

정치인이 지녀야 할 자질, 즉 성품이나 소질로서, 정치인이, 막스베버가 말한 ‘열정’과 ‘책임’, 그리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사자인 정치인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치인을 갖게 될 그 지역사회 또한 복된 일이 될 것이다.

막스베버가 말한 3가지 자질을 갖춘 정치인조차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는 하나, 앞으로의 올바른 한국 정치를 위해 ‘공감력’이 정치인의 필수 필요자질에 포함되어야지 않겠는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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