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과 ‘덕’
‘탓’과 ‘덕’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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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어떤 일이 일어난 뒤에 그 결과를 분석할 때 원인이 어디 있느냐를 따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성공한 원인이라면 그것을 유지해서 앞으로도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일이고, 실패한 원인이라면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제거할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긍정적 원인은 자신에게서 찾고, 부정적 원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내 탓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 부정적 원인에서 자신은 제외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심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예로부터 남을 탓하는 말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 ‘내 탓 네 탓 수염 탓’, ‘못 살면 터 탓’, ‘소경이 넘어지면 막대 탓’ 등등. 이런 말들에는 남을 탓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우리 조상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길 가다 넘어져도 대통령 탓이라고 한다니. 오죽하면,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의 ‘내로남불(Naeronambul)’이라는 영어 표기가 등장했겠는가.

이렇게 남을 탓하는 사람들을 인성이 어쩌고 하면서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남 탓하는 것은 인성의 문제가 아닌, 뇌 작용의 문제라고 말을 하곤 한다. 뇌는 어떤 인식이나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성화되도록 하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부분 성공한 사람의 공로를 크게 보게 되고, 자신이 뭔가 실패했다든지 자신의 책임은 가능하면 가볍게 생각하도록 이루어지는 심리 기전이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한 결과를 자신의 공로로 돌리게 되면 자아 존중감이 높아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반대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건 가능하면 그걸 피하고 싶고 직면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다. 자기 잘못을 직면하게 되면 우울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야말로 ‘탓’하기 바쁘다. 여당과 야당이 남 탓하기 바쁘고, 지역별로 상대 지역 탓하기 바쁘고, 세대 간에 서로 탓하기 바쁘고, 성별로 갈린 견해는 상대방 탓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야말로 너와 내가 같은 나라에 사는 같은 국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같은 사건을 두고 엊그제까지 책임지던 사람들이 자리가 바뀌니 그건 옛날 일일 뿐이라면서 상대 탓하기에 바쁘고, 그 문제의 책임을 묻던 이들이 자리가 바뀌니 옛날 탓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제발 ‘내 탓이오’라는 말을 할 수는 없을까. ‘내 탓이니 용서하고 잘해주시오’하거나, ‘오늘 열심히 해서 잘해보겠습니다’ 할 수는 없을까.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만났던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이다. 시대는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데, 어째 정치는 몇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를 않을까. 당리당략, 당파싸움, 당동벌이(黨同伐異), 사색당파, 붕당정치 등등 정치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어서 그렇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우리나라는 ‘문화는 이류, 경제는 삼류, 정치는 팔류인 사회’라고.

요(堯) 임금 시절에 불렸다는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면서 하루하루를 살 수는 없을까. 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다. 과연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넓고 번화한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어 그 노랫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日出而作(일출이작) 日入而息(일입이식) 鑿井而飮(착정이음) 耕田而食(경전이식) 帝力干我何有哉(제력우아하유재) 해가 뜨면 일하고/해가 지면 쉬고/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밭을 갈아서 먹으니/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리.”

국민들이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기보다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조차 못 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의미이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이름쯤은 몰라도 좋다. 아니 모를 정도로 정치가 고요하면 좋겠다. 국민들은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제발 정치권의 잡음으로 스트레스나 주지 않는다면 정치인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부디 자라는 아이들의 입에 정치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날을 기대해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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