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기록한 어제와 오늘…“변해선 안될 제주 가치 지켜야”
부자가 기록한 어제와 오늘…“변해선 안될 제주 가치 지켜야”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2.09.04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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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주&제주인
2. 고영일, 고경대 부자
1950~90년대 활동 父 고영일 이어 
제주 풍광·인물 비교하는 작품 촬영
상설전시관 2021년 큰바다영 개관
고경대 작가가 최근 큰바다영에서 이뤄진 본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나영 기자. 

카메라로 대를 이어 제주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부자(父子) 사진작가가 있다.

부친은 해방 직후 언론인으로서 제주신문사 편집국장 등을 지내고 1950년대 이후 제주의 속살을 기록하는 작업을 활발하게 벌였던 도내 1세대 사진작가인 고(故) 고영일씨다.

아들은 고경대씨로 2011년 이후 이른 바 ‘고영일 사진 따라 하기’ 연작을 통해 아버지의 시선에서 출발해 제주자연의 진면목과 변화상을 조명하며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세 누이와 의기투합해 제주시 건입동에 부친의 사진세계를 조명하는 사진예술 공간 ‘큰바다 영(瀛)’을 열고 대표직을 맡고 있다.

주제별 큐레이션을 통해 도민을 만나 소통하는 그는 사진 속 숨겨진 새로운 사실과 증언을 듣고, 메모지에 기록하는 등 관객과 함께 전시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본지는 최근 큰바다 영에서 고경대 작가를 만났다.

1960년대 산지천 해상호를 찍은 고영일 작가와 2021년 현재 모습찍은 고경대 작가 작품이 병치돼 있다. 사진제공=큰바다영.

#이추룩 변헌 거 보염수과?

고경대 작가의 고영일 사진 따라 하기는 2011년 시작됐다.

그의 작업량은 부자의 사진을 병치(2장)한 작품을 사진 1점으로 볼 때 1000여 점에 이른다.

고영일은 1955년 남궁다방에서 부종휴 사진작가와 함께 제주 첫 사진작품 개인전을 열었고 1950~90년대 제주의 변화상을 기록했다.

과거 고 작가는 아버지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고영일은 80세까지 출사를 나갔고, 이후 두루마리(롤)로 쌓아뒀던 작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분량은 손가락 네 개가 들어갈 정도 두께의 사진첩 20권에 달했다. 총 사진자료는 2만여 점이다. 고인은 2007년 암 판정을 받고 서울에서 항암 치료를 받았다.

고 작가는 치료가 끝나면 제주에 가서 옛 작업을 이어가면 어떻겠냐고 부친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고인은 항암치료 끝에 쇼크로 2008년 별세했다.

서재철 작가와 신상범 선생 등 제주카메라 클럽 후배들이 추모전을 제안했다.

추모전에 활용될 사진을 선별해 달라는 요청에 고 작가는 2010년 처음으로 부친의 필름을 보게 됐다. 고인이 기록하고자 했던 1950~90년대 제주의 변화상에 큰 감동을 받았다.

고 작가는 “아버지 작업이 풍경화 위주라고 생각했지만 제주 어린이와 어머니 등 더 넓은 작품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회상했다.

2011년 3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린 추모 전시 개막식에서 그는 “아버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상설전시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큰바다 영 개관으로 약속은 지켜졌다.

고 작가는 부친에게 생전 권했던 사진작업을 자신이 하기로 다짐했다.

2010년 KT&G에서 생활 사진과 훈련코스를 이수한 그는 2011년부터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고영일 사진 따라 하기’ 작업에 나섰다.

둘째 딸의 대학 입학 후 부부가 제주에 정착했다.

고 작가에게 아버지의 사진첩은 수수께끼였다.

첫 작업부터 2015년까지 아버지의 사진첩에서 쉽게 알 수 있는 눈에 띄는 장면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체계성을 갖춰 동쪽 지역을 우선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성산에서 제주시까지 작업을 모은 사진집 ‘이추룩 변한 거 보염수광?’을 발간했고 서울과 제주 전시를 진행했다.

2018년 문화공간 와반에서 산남지역 일원을 조명한 전시가 진행됐다. 그해 후반부터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을 맡아오다 2020년 암이 발병해 사직했다.

암 치료가 끝나고 고 작가는 2020년 상반기부터 고영일 따라 하기 작업을 재개했다.

같은 해 11월부터 도내 한 방송사에 지속적으로 출현해 아버지와 자신의 작업을 알려왔다.

서쪽을 중심으로 자구내포구와 용수리, 신창리, 협재리에서 작업이 지속됐다. 현재는 미발표된 고영일 작품을 중심으로 제주시와 동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고영일 사진가(왼쪽)와 고경대 사진가의 사진이 병치된 사진작품 '부전자전'. 사진제공=큰바다영.

#도민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전시

고 작가는 고영일 사진 따라 하기를 도민이 함께 만드는 작업으로 규정했다.

고 작가는 사진을 촬영할 때 현장에서 도민과 만나며 답을 찾았다.

그가 한림에서 부친이 촬영한 해녀 사진을 해녀들에게 보여주니 ‘이 언니네!’라고 알아보며 결국 당사자를 만나 사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고, 옛날 안경점과 치과 위치가 변한 것을 동네주민들에게서 듣고 앵글에 담기도 했다.

그는 개인전을 방문한 도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고 기록해 나가면서 아버지의 사진첩 속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고 작가는 큰바다 영 개관이후 관객에게 사진 속 장면을 설명해주고, 거꾸로 도민들로부터 자신이 몰랐던 숨은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큰바다 영의 첫 전시는 제주 어린이로부터 시작해 제주 어머니, 고영일 사진 따라 하기까지 연작이 선보였다.

첫 전시에서 약 50년 전 고영일의 사진 속에 어린이였던 인물 4명이 전시장을 찾아와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고 작가는 “한 관객이 성읍마을 전시장에 떨어져 설치돼 있는 돗통시(돼지가 있는 제주식 화장실) 사진을 보더니 아버지와 아들의 각각 다른 집의 돗통시라고 알려줬다”며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사진 속 숨은 의도를 관객이 해결해 주는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큰바다 영에는 사진 작품 곳곳에 대한 메모와 관람 후기로 가득하다.

고 작가는 전시 공간에 부친의 사진을 따라할 수 있는 장소를 지도 형식으로 정리해놓고 ‘고영일 사진 따라 하기’를 도민 모두에게 제안한다.

그는 “고영일 사진 따라 하기의 주체는 저뿐만 아니라 도민 모두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큰바다 영에 사진을 보내주면 함께 전시할 예정”이라며 “고영일 사진 작품과 병치될 사진은 제 사진뿐 아니라 당시 부친과 함께 출사를 다니던 사진가가 될 수도 있고, 향후 오늘 날과 맥락이 맞는 다른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영일 사진 따라하기 작업을 진행하면서 오늘 날 전혀 제주의 가치와 상관없이 모습이 바뀌어버리는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며 “제주가 지켜야 할 가치를 정하고, 도민과 관광객이 이를 지켜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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