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어서는 여기 안 올거…”
“나 죽어서는 여기 안 올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9.04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선산에 벌초를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온 가족이 나서 벌초를 했는데 올해는 벌초 용역회사에 일을 맡기고 우리는 음식만 장만해서 제만 올리고 왔다. 

묘소는 물론 그 주변까지 말끔히 벌초하고 정리해 놓은 솜씨가 역시 프로는 프로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벌초길엔 아들과 조카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모두 빠지고 동생과 나, 그리고 집사람. 그게 모두였다.

제사 음식을 올리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마귀 한 마리가 반갑다.

벌초 때면 집사람이 선산에 와서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묘소가 쭉 조성된 끝자리에 서서 “내 자리가 이쯤 되겠네”하고는. 

“나 죽어서는 여기 안 올거”라고 한다.

이유인즉 살아 생전에 시조부모, 시부모님들 모두 모셨으니 저승에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한다.

화장을 해서 유골을 바다에 뿌려주면 파도를 타고 세계를 유람하겠다는 말도 하면서.

▲사실 벌초 때면 선산과 묘소를 언제까지 가꿔야 할까 하는 걱정이 든다.

제주사회의 벌초 행사들도 상당히 축소된 느낌이다.

집안 어른들이 타계하고 코로나19 이후 거리두기로 친족관계도 소원해지면서 산소 가는 길에 젊은이들 보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렇고보니 벌초길에 만나는 사람은 모두 늙은이뿐이다.
지금 2030 3040세대들은 부모를 따라 한두 번 선산엘 가본 적이 있지만 부모세대가 타계한 뒤에도 벌초를 할까? 

추석 전에 벌초를 안 하면 조상이 덤불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는 이야기는 이제 일곱 살 손자도 픽 웃는다. 손자 녀석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벌초문화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벌초 부담을 벗겨주고 아들 딸 손자손녀가 선산, 나무그늘 아래로 소풍처럼 놀러 와서 깔깔거리며 뛰놀다 가면, 간 사람이나 산 사람에게 그것보다 더 행복한 광경이 어디 있을까. 

▲지난달 한 조사 결과를 보니 자신이 죽으면 화장한 뒤 산이나 강에 뿌리든지 자연장(나무나 잔디 아래 뼛가루를 묻는 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또 매장을 하더라도 분묘를 조성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답도 상당했다.

명절 제사 등 제례도 마찬가지다. 

나의 어머니는 타계하기 전에 “내 제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 제삿날에 함께 차려주면 자신이 그때 오겠다는 말을 웃음으로 남겼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를 아버지 기일에 함께 ‘합제’라는 것으로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합제를 하고 있다. 주위의 추세를 보면 이런 합제 문화는 앞으로 모든 제례에 더욱 확대될 것 같다.

요즘 대부분 젊은이들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라 일에 절어 산다. 추석 연휴에 허리를 못 펴는 대신 가족여행을 가거나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행복이 곧 어른들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오늘 제주에 닥치는 태풍 ‘힌남노’ 역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유난히 크고 밝은 추석 달이 뜰 것이다.

세상사가 힘들고 어려울수록 추석 달이 크고, 달빛도 화려하다고 하니까.

추석 연휴에는 제주시 외도동 월대(月臺)를 가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곳에 1900년 고종 37년 연간의 문인 홍종시(洪鍾時) 선생이 쓴 ‘월대’란 명문이 남아있는데 그 ‘달 월(月)’자가 마치 보름달처럼 둥글다.

월대 소나무 가지에 걸린 둥근 달을 한 번 보고, 그 가지 밑에 홍 선생이 쓴 ‘둥근 달’을 다시 보면, 마음에 휘영청 달이 솟아오를 것이다.

추석의 석(夕)은 원래 달 월(月)과 같은 자의(字意)다. 10일 저녁 6시엔 벌초에는 빠졌던 가족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도 하고 모두 고개들었으면 싶다.  그 시각에 추석달이 뜬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