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9.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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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티슈나 화선지에 사인펜으로 점 하나를 콕 찍고 나서 물을 묻히면 서서히 번지면서 그러데이션처럼 전체를 물들여 버린다.

있을 수 없는 일들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러려니 하게 된다. 사상이나 이념 또는 어떤 풍조가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도 시초는 점 하나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어느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 올렸다는 호소문을 본 적이 있는데 오래전에 올린 글이 요즘 유튜브에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검정 교과서인 ‘윤리와 사상’ 교과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국민주권의 원리를 인민주권의 원리로 설명하면서 그 단원 전체가 국민 대신 인민이란 용어로 대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교육과정 및 집필 기준을 검토해 보니 ‘인민주권의 원리’를 설명하라고 서술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윤리 교과서를 확인해 보니 세 종류 교과서는 인민, 두 종류의 교과서는 ‘국민’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교육자적인 양심으로 교과서를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던 거다.

하도 믿기 어려워 검색해 보았더니 신문에도 그런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도가 있었다. 결국엔 시간이 많이 지난 후 교과서가 수정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아, 세상이 이렇게 변했구나. 참담한 기분이었지만 혹시 국민과 인민을 동일한 뜻으로 사용할 수도 있나 싶어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반면에 인민은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끝에 대체로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이른다’라는 부연설명이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영어 people을 해석하다 보니 그런 거다’ 또는 ‘국민이란 말은 일제의 잔재라서 그렇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인민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고 대부분의 국민은 인민이라고 하면 북한을 떠올릴 것이다.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를 무시하면서 국민 대신 인민을 쓸 이유는 없어 보인다. 

국민이 아닌 인민을 육성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은 분명히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이나 목표와는 다른 어떠한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 교과서로 배운 청소년들은 인민이라는 용어를 거부감 없이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현직 교사가 이런 호소문을 올렸겠는가.

교육과정이 다시 개정되는 시점에 이미 지나간 일을 구태여 말하는 이유는 비슷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부터 가르치게 될 개정 교육과정 시안이 요즘 인터넷에 공개되고 문제점이 지난 8월 31일자 조선일보에 보도가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사용할 한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지고 6·25와 관련하여 ‘남침’이 슬그머니 사라졌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전 정부에서 선정한 교육과정 연구 용역을 맡은 관련자들이 지난해부터 집필했다 한다.

교사 시절에 6·25가 일본이 침략해서 일어난 전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소멸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기에 어느 쪽으로든 편향된 교과서는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요즘은 반공이나 애국을 말하면 극우라고 매도당한다. 울분에 차서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가면 태극기 부대라 조롱하고, 반공·멸공을 말하면 철 지난 색깔론으로 치부한다. 

정치인이나 지식인들도 분위기에 눌려서 할 말을 제대로 못 한다. 그러는 동안 경각심은 허물어지고 체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말았다.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나라는 빨강은 아니지만 이미 분홍색쯤으로 물들어버린 것 같다고. 

교육 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보면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특정인이나 어느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피지배자인 인민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그저 나라의 주인인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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