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제
가난의 문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8.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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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는 제주도 기관장 후보로 내정된 어느 인사에 대해 ‘잘사’(잘사는 사람)라며 우리 같이 ‘못사’(못 사는 사람)‘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축재 문제를 비판하며 ‘OO당 쪽 사람’일 것이란 추측도 한다.

왜 그 사람이 OO당 사람같냐고 하니까. “그 OO당은 잘 사는 사람들 쪽이니까요”한다. 그 사람 어떻게 해서 잘 사는 걸 아느냐 했더니. 그의 부동산 문제를 꺼낸다.

어떤 사회체제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심하면 재앙이 된다고 한다. 택시기사 말을 들으며 제주사회가 ‘못사’와 ‘잘사’로 두 동강이 된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나라님도 해결 못 한다는 가난의 문제는 이제 발등의 불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자료에 의하면 도민 평균 순자산 규모는 양극단이다. 

상위 25% 사람들이 평균 14억1128만원을 갖고 있는 데 반해, 하위 25% 사람들은 1512만원을 갖고 있다. 그 격차가 무려 93.3배에 달한다.

특히 이 상위 25% 사람들은 제주도 전체 순자산 중 74.4%를 차지하고 있어서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많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상위 25%와 하위 25% 사이에 있는 중위 50%가 갈수록 ‘못 사는 사람쪽’으로 ‘자발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잘 살고 있다는 사람은 줄고 어딜 가나 살지 못하겠다는 말뿐이다. 이는 가난의 두 가지 측면, 절대적 빈곤과는 별개로 상대적 빈곤이라는 심리적·사회적·의식적 측면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때문으로 보인다.

생활 수준으로 볼 때는 분명 괜찮게 살고 있는데, 못 산다고 느끼는 ‘상대적 가난’ 인식이다. 상대적 가난은 간단치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떤 시대가 무너지는 것은 민중의 ‘절대적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가난과 박탈감을 갖는 계층 때문이라는 이론도 있다.

▲돌이켜보면 제주사회는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정도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가난하고 배가 고팠다. 그런데도 옛날엔 행복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 어떤 사람이 남한의 삶은 풍족하지만, 북한에서는 가난해도 행복했다는 말을 하는 것도 같은 얘기다. 다 같이 가난했기에 상대적 박탈감이 적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최근 지표의 추이처럼, 부(富)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중위 50%가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해 심리적·사회적·의식적으로 ‘못 사는 사람’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공동체에 요구되는 연대의식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주처럼 과거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사회의 경우, 연대의식이 약화되는 것은 사회 존립을 근본적으로 위태하게 한다. 세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시스템 강화 등 특단의 대책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상대적 가난은 어떤 복지와 분배(分配) 시스템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제갈공명이 와도 별 수 없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부잣집 아들 다솜은 아줌마, 기사님, 제시카 선생님에게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냄새를 씻기 위해 어떤 비누를 써야 하는지를 고민하지만, 그 가난의 냄새라는 것은 실재 현상이 아니라 마음의 냄새다. 가치 종말의 시대가 빚어낸 괴물의 냄새다.

그것을 씻기 위해선 비누가 아니라 우리 자존 회복이 필요하다. 세상 많은 가치들이 별 볼 일 없다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가 숭앙하는 빛나는 가치. 돈 이외에도 값진 가치들이 많이 있는 사회, 그 가치가 제대로 존경받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 양극단의 위기를 해결할 방안이라고 본다.

황금을 돌 같이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우리 제주사회는 ‘물질과 소유’가 아니라 ‘가치의 힘‘을 길러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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