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는 자리돔
고향을 떠나는 자리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8.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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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제주도 사람들은 자리돔을 즐겨 먹는다. 젓갈을 담아 먹기도 하고 볶거나 구워 먹기도 하고 물회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여름에 먹을 수 있는 바닷물고기 중 단연 일순위다. 여름이면 포구 주변의 식당은 늘 북적인다. 특히 이름난 동네를 꼽으라면 서귀포 보목동 포구나 법환동 포구가 떠오른다.

제주도 한 바퀴를 죽기 전에 걸어봐야지 결심하고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반 바퀴를 더 돌았다. 제주시를 출발해 동쪽으로 성산포를 지나 서쪽으로 돌았다. 서귀포로 들어오면서 보목포구를 지날 때는 자리물회를 떠올리기도 했으나 이미 다른 마을에서 식사를 마친 터라 아쉬움만 떨구며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은 서귀포 부두를 지나 좀 더 시골에서 먹는 맛이 훨씬 운치가 있을 듯하여 법환포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삼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관광 붐이 일어나던 시기에 우연히 잠수함을 탈 기회가 있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황홀한 광경을 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보라색 가시수지맨드라미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문섬 주변은 온통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눈이 부셨고, 그때 처음으로 물속에 있는 자리돔의 무리를 보았다. 한꺼번에 움직이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서귀포 앞바다 문섬 주변은 연산호와 더불어 다양한 열대어류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자리 삽써, 자리 삽써!”하는 소리에 오래 두고 먹을 젓갈을 담으려고 어머니는 자리 장수를 집으로 끌어들였다. 능숙하게 소금의 양을 가늠해주기까지 하므로 젓갈 만들기에 실패하는 일은 없었다. 대바구니에 담긴 자리는 싱싱했고 어린 나는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것에 흥미를 느껴 얼른 한 마리를 된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베지근한(기름진) 맛이 일품이었다. 그때는 물고기가 잘못된 환경으로 인하여 기형이 되는 줄 꿈에도 몰랐다. 청정환경을 유지하지 못하면 바닷속 물고기들은 모두 변형이 되고, 인간은 그러한 것을 먹게 된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아마 그런 것만을 골라 먹지는 않았을 테다. 물 밖으로 나온 자리돔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터라 바닷속의 모습을 보는 순간엔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특이하게도 꼬리 부분에 하얀 발광생물을 붙이고 있다. 자리돔은 혼자 살 수 없는 생물과 공생하는 독특한 생명체다. 바다 밖으로 나오면 그 발광생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롯이 자리돔만 보게 된다.

자리돔은 제주 사람에게 있어 토속적인 향토 음식을 만드는 풍족한 식자재였다. 특히 자리물회는 다른 지역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독특한 음식이기도 하다. 자리돔은 아열대성으로 남쪽에서 올라오는 구로시오 난류 덕분에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어류인데, 이제는 먹거리로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고수온의 영향으로 고향을 떠나 북상하고 있다. 생물이 안정된 환경 속에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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