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조연
빛나는 조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7.2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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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광주광역시 서부교육지원청 전문상담순회교사

요즘 드라마에서는 조연의 연기가 더 감칠맛 난다. 주연은 대부분 젊은 신인들이 하지만, 조연은 연기경력이 길고 내공이 많아 연기력도 좋고 드라마 안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린다.

윤동주 선생은 젊은 나이에 작고하였는데, 우리는 학생 때부터 윤동주의 시를 만나고 성장했다. 그를 알리기 위해 전 삶을 바친 귀한 분의 덕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광주 사는 동안 남도 여행을 통해 문학 경험 넓히기가 목표이다. 광양에서 윤동주 알리기 위해 전 삶을 바친 정병욱 선생을 만났다. 그의 생가는 1925년 망덕포구에 지어진 점포형 주택이었다. 그곳은 윤동주의 대표작 19편이 수록된 육필원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보존과 부활의 공간으로 문화적인 의미가 크다.

정병욱 선생 일가가 이 가옥에 터를 잡은 것은 부친 남파 정남섭 선생 때이다. 남파 선생은 고향 남해에서 20세의 나이로 3·1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거제와 하동에서 교사로 일했으나 일제 치하에서 마음 편한 교직이 아니어서 사임 후 광양으로 이주하여 양조사업을 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시절 면장을 역임하고 징병에 끌려간 큰아들을 대신하여 정병욱 모친과 함께 유고를 보존한 공로자이다.

192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정병욱선생은 서울대교수 및 박물관장을 역임한 국문학자이다. 그는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 그곳에서 윤동주를 만난다. 그곳에서 북간도의 시혼(詩魂)이 남도에서 부활하게 된 인연의 시작이 된다. 윤동주가 창작에 몰두하던 1941년 정병욱은 하숙을 함께하며 동주보다 두 살이나 많지만 서로 문학 형제로 마음을 나눌 만큼 후배에게 예를 갖춘 그의 인간성을 살펴볼 수 있다. “마음을 주고 받는 글벗”으로 시작하여 조언을 주기도 하였는데 “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서시”등 시인의 대표작들이 이 시기에 다수 쓰였다.

이런 우정으로 윤동주는 졸업 즈음에 손수 작성한 자선 시집을 정병욱에게 증정한다. 당시만 해도 인쇄술이 발전하지 않아 논문을 자필로 작성하여 보전하게 된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윤동주는 독립 운동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2월16일 29세 젊은 나이로 순절하게 된다.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일제는 조선인 청년들까지 전선으로 내몰게 되는데 연희전문을 졸업한 청년 정병욱은 1944년 1월 일본군에 끌려가게 되고 광양에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유고 보존을 부탁한다.

“동주나 내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연희전문학교로 보내어 세상에 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어머니는 보물처럼 유고를 간직하였다. 주변이 일본 경찰로 가득함에도 목숨처럼 아들의 부탁을 지키게 된다. 전쟁 후 병욱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어머님은 명주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던 동주의 시고를 자랑스레 내주시면서 기뻐하셨다.

광복이후 정병욱은 시인의 연희 전문 동기 강처증과 함께 유고 31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여 윤동주의 시혼이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선생은 이후에도 윤동주와 그의 문학을 널리 소개하며 윤동주 시비 건립 등 기념 사업에도 앞장섰다.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도 윤동주를 알리는 일에 전 삶을 다하였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는 빛나는 조연 정병욱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문학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면서도 정병욱이란 이름을 광양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철저히 윤동주를 빛나게 하는 조연으로 살았다. 남도에서 정병욱선생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대한민국은 그의 인품을 통해 진정한 보물을 얻었다. 벗 윤동주의 시를 보존하고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게 헌신했던 정병욱선생은 자신의 아호를 백영(白影)이라 부르며 동주가 민족의 모습으로 그리던 흰그림자를 평생 기억하고자 하였다. 그는 철저하게 윤동주의 조연으로 살았다. 그의 노력으로 우리들은 진정한 윤동주를 만날 수 있었다. 빛나는 조연의 역할에 박수를 보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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