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자들과 중국학자들의 교류 ‘한 눈에’
조선 실학자들과 중국학자들의 교류 ‘한 눈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7.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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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과천문화원·2010)

후지츠카, 세한도 및 추사 관련 자료 기증
추사 스승인 옹방강 친필 유일본 포함
양국 학술 교류 깊이 파악…가치 높아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표지.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표지.

어디 가면 그곳 박물관으로 마실 가는 걸 좋아한다고 수선을 떨어 놓고, 막상 ‘등잔 밑이 어둡다’고 최근에 꼭 보고 싶었던 특별전 하나를 놓쳤다. 그것도 도내에서 열렸고, 아침저녁 출근길에 반드시 지나가는 길목에서 있었던 전시라서 더욱 아쉬웠다. 한참 전이지만 제주로 이주하기 전에 한번 관람한 적이 있었던 작품이라 방심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어난 사단이다. 

지난 5월 29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렸던 ‘세한도(歲寒圖), 다시 만난 추사(秋史)와 제주’전 이야기다. 늘 ‘국보 중의 국보’ 등 엄청난 타이틀이 붙는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준 이 그림을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추사가 직접 쓴 화제(畫題)에 나오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인구에 회자되게 만들었던 명작이지만, 막상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에는 그다지 잘 그린 그림으로 보이지 않은 까닭은 그림 자체 보다는 그 그림에 서려있는 정신을 더 중시하는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이라는 수식어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1844년에 그려져 여러 소장자를 거쳤던 이 그림을 얘기할 때, 도쿄대공습 몇 달 전인 1944년에 극적으로 일본에서 다시 찾아온 서예가 소전 손재형의 일화는 빼 놓을 수 없지만, 더 주목되는 건 이 그림을 아무 조건 없이 내어준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1879~1948)다. 그리도 아끼던 이 그림 외에도 경성제대 법문학부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했던 그가 추사에 반해 수집한 방대한 양의 관련 자료를 사후에 그의 아들 아키나오(藤塚明直)을 통해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과천시에 기증했다. 오늘은 그 기증 자료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 보련다.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내용 부분.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내용 부분.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내용 부분 2.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내용 부분 2.

바로 청대 중기의 경학과 금석학, 시·서·화에 두루 능통했던 대학자 담계(覃谿) 옹방강(翁方綱 1733~1818)과 그의 둘째 아들의 공동 작업을 거친 미완성 저술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과천문화원 2010)이다. 이 책은 직접 쓴 초고본이자 출판되거나 사본이 없는 유일본으로 당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의 실학자들과 중국학자들의 교류 상황을 실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된다.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과천문화원, 2010) 발간사.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과천문화원, 2010) 발간사.

당시 고증학에서 중시하는 금석학 연구에는 비석을 직접 탁본한 자료가 필수적이었고, 조선에 가 본 적이 없는 담계가 조선의 금석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서 교유한 적이 있던 추사를 비롯하여 자하 신위 등 조선 학자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그렇게 전해 받은 조선 금석문의 내용과 전해 준 사람, 그의 견해 등을 수록한 이 책을 통해 서로간의 연구 성과를 교환했던 당시 양국 학술 교류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파악할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원표지 영인 부분.
‘해동금석영기(海東金石零記)’ 원표지 영인 부분.

추사를 상징하는 ‘추사체’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옹방강의 저술인 이 책을 포함해서 평생을 수집한 자료를 우리에게 조건 없이 돌려주고 떠난 후지츠카나 ‘국보 중의 국보’를 포함한 다수의 애장품을 역시 조건 없이 돌려준 손세기·손창근 부자와 같은 분들을 이제 우리는 추사가 낙관에 새겼던 바와 같이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아야’(長毋相忘)겠다. 그 분들이 행한 그리 아끼던 애장품을 조건 없이 내놓는 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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