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와 정치
갈치와 정치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2.07.13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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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도 갈치가 있다.

먹갈치와 은갈치, 두 종류다. 물론 생선 갈치는 아니다.

골프 라운딩에 앞서 일명 로컬 룰을 정할 때 갈치가 등장한다.

홀컵에서 퍼터 길이 이내에 공이 위치할 때 이른바 ‘OK’(컨시드) 범위를 결정짓기 위한 일종의 은어다. 먹갈치는 그립까지 포함한 사실상 퍼터 전체의 길이만큼 컨시드가 허용되는 반면 은갈치는 그립을 제외한 샤프트 부분까지 더 짧은 거리에 들어와야 컨시드를 받는다.

생선 먹갈치는 검은색 바탕에 흰 점이 많고 은갈치는 은분이 많아 은빛이 난다. 실제 대부분 퍼터의 그립이 검은 톤이고 샤프트는 은색인 점에 착안한 기발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갈치 컨시드는 골프 스코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약속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말골퍼들의 라운딩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의 억지나 떼쓰기로 은갈치먹갈치 룰이 엉터리로 적용되거나 최악의 경우 서로 인상을 쓰는 사태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골퍼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골프 경기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신뢰의 훼손이다. 사고를 친 골퍼는 해당 그룹 멤버에서 퇴출되기 일쑤다.

다음 라운딩 약속을 잡을 때 문제의 골퍼를 더 이상 부르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불과 취임 두 달여 만에 뚝 뚝 떨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데 이어 최근 40% 지지율의 벽이 무너졌고 30%대마저 위협받고 있다.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절반에 가까운 48.56% 득표에 참여했던 지지자 중 상당수가 믿음을 거둬들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윤 대통령이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이 실종됐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이 최근 도어 스테핑 과정에서 툭 던진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란 발언은 대통령으로선 해선 안 될 역대급 실언 중 하나로 기록 될 듯싶다.

왜 자신이 국가 최고 지도자로 선출됐고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법안을 추진할 당시 탈당해 얼마 전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 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 대통령이 프로답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어쩌면 프로답지 않아서, 기존 정치인답지 않아서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답지 않아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정치인 출신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제주 최대 갈등현안인 제2공항에 대해 발언한 내용을 놓고 일부 도민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오 지사는 취임 당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2공항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에 대해 현 단계에서 중앙부처 사업에 제주도지사가 갖고 있는 법적 권한이 뭔가라고 되물었다. “제주도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릴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국회의원 시절 제2공항 입지에 대한 대안으로 정석비행장을 제시했던 것과 관련해선 오 지사는 그 당시는 정치인의 견해이고 의견이었다.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던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앞서 지방선거 당시 오 지사는 제2공항과 관련 공항 인프라 확충 필요를 전제로 갈등 해결, 제주도민 이익 최우선, 도민 결정권 확보 등의 원칙을 강조하는가 하면 선거 막판 이재명송영길 발() ‘김포공항 이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중앙당에 공약 철회를 요청했다.

2공항에 대한 입장이 당선 전후로 달라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골프에서 은갈치 룰을 적용하기로 해놓고 경기 중에 먹갈치로 바꾸면 곤란하듯 정치나 행정도 일관성이 생명이다. 말을 바꾸거나 약속을 어겨선 신뢰를 잃는 건 당연지사다.

양치기 골퍼가 상종 기피 대상으로 낙인 찍혀 동료들과 거리가 멀어지듯이 믿음을 주지 못하는 리더는 유권자들의 마음에서 지워지기 마련이다. 지도자로서 역할을 상실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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