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에 관한 기억
야자수에 관한 기억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7.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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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작가

거리가 좀 달라진 느낌이다. 자세히 둘러보니 도로 양쪽에 하늘을 찌를 듯 쭉 늘어서 있던 야자수가 보이지 않는다. 거리의 야자수는 어디로 갔을까?

알고 보니 가로수로 심은 야자수를 제주 자생 수종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지난해부터 추진되고 있다 한다. 그래서 야자수들이 해수욕장에 이식되었다는 걸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야자수 해변은 여행객의 눈길을 머물게 할 멋들어진 풍광이 될 것 같기는 하다. 누군가는 야자수와 더불어 가슴 설레는 추억을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는 이런저런 이유로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던 야자수를 도심지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약간 아쉽다. 하지만 태풍 등 재해 위기 때마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정전 피해나 보행로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니 사고를 예방하겠다는데야 어쩌랴.

갑자기 야자수에 대한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1980년대 중반,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는 커다란 야자수가 여러 그루 있었다. 뜻있는 분들이 기금을 모아 학교에 기증한 나무였다. 그때만 해도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그 후 20여 년 만에 그 학교에 다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야자수는 엄청난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느 해 큰 태풍이 불었다. 이름이 ‘무이파’로 기억이 된다. 야자수가 비바람에 흔들리면서 건물을 계속 두드려 패는 바람에 학교 옥상 건물이 그만 파손되고 말았다. 지붕이 날아가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여러 개의 교실이 물바다가 되었다.

쉴 새 없이 퍼붓던 비가 멈추고 사납던 태풍이 지나가자 교실 바닥에 고인 물을 퍼냈다. 언제 태풍이 불었냐는 듯 평온해지고 눈부신 햇빛이 초록빛 나무 위에서 부서질 즈음 나는 교실에서 구멍 난 천정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때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이 꽤 강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밤이었다면 뚫린 구멍으로 새까만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우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거리를 알기 위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길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로수의 역사는 꽤 오래된 셈이다. 들은풍월이지만 오리나무는 오리마다 이정표를 삼아 나무를 심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시무나무는 이십 리마다 있는 나무라고 시무나무(스무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률적으로 미루나무를 심었다가 그 후에 플라타너스를 많이 심었다. 그런데 나무가 크고 잎사귀가 넓어 주변 농지에 그늘을 지게 하는 바람에 많이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가로수도 시대에 따라 이런저런 이유로 바뀌니 야자수 또한 교체되는 게 이상할 것은 없지만 막상 거리에서 볼 수 없게 된다고 하니 특별히 내 기억 속 야자수가 그리워진다. 

도시에 네모난 콘크리트 상자 같은 건물만 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가로수가 있음으로 해서 도시는 아름답고 청량하다.

우리 집 근처만 해도 가로수 때문에 사계절의 모습이 각각 달라진다. 봄이면 야들야들한 연둣빛 신록이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여름이면 진녹색 이파리가 풍성한 그늘을 이뤄서 좋다. 가을이면 노란 나비 떼가 무더기로 앉아있는 듯, 해 질 녘 붉은 노을이 나무에 내려앉은 듯 붉고 노란 단풍이 곱다. 그런가 하면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조차 멋스러워 조물주의 솜씨를 느끼게 한다.

가로수가 없다면 거리에서 그런 분위기와 사계절의 정취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

뚜벅뚜벅 걷다가 잠시 멈추고 가로수 가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면 물바다가 된 교실 안에서 날아간 지붕의 잔해 사이로 보이던 하늘이 생각나기도 한다.

가로수는 도시의 얼굴이다. 가로수로 제주만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거리가 된다면 그것도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제주 수종으로 바꾼 가로수가 제주의 멋과 낭만을 느끼게 했으면 좋겠다.

도심지의 길이 나무로 인하여 어떻게 바뀔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해맞이 도로의 수국길이나 붉은 열매가 눈길을 끄는 사라봉 근처의 가로수길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고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명품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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