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죽음을 위한 기도
복된 죽음을 위한 기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6.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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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며칠 전 사촌 언니께서 돌아가셨다. 코로나로 한동안 뵙지 못했는데 얼마 전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방송인 송해(송복희)님도 떠나셨다. 송해는 95세까지 건강하게 활동하시다 오래 눕지 않고 돌아가셨으니 어떤 이는 복된 죽음이라고 한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복되게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까지 몸져눕지 않으시니 감사하다. 부모님께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부정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앞에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자식들은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백수를 누리시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선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자기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현재의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면서 언제가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잊고 산다. 그 죽음을 기억하게 해 줄 때가 있다. 바로 가까운 지인이 죽었거나, 멀쩡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할 때이다. 

죽음을 연구하는 학자는 잘 죽는 그것(well-dying)이 잘사는 것(well-being)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결국,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잘 사는 것은 잘 먹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에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미쳤는가로 평가된다.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닌, 이웃사랑 실천, 봉사와 성실한 생활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지나친 환상이 없고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오래전 어떤 연수에서 죽음을 대비하여 유서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흰 종이를 받아들고 남겨진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데 눈물을 삼키며 써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의 시간, 장소, 방법 등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그래서 복된 죽음을 위해 기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성당 자매님은 미사 후에 꼭 ‘복된 죽음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나도 가끔은 요셉 성인의 도움으로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의 팔에 안기어 하늘로 오르게 해 달라는 그 기도를 바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전쟁, 교통사고, 질병으로 죽음을 맞고 있다.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라도 ‘더 많이 사랑할걸’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고 한다.

현세에서 말하는 복된 죽음은 ‘구구팔팔이삼사’처럼 살다 가는 것이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좋은 일 하며 살다가 이삼일 있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을 수는 없다.   영정 속에서 언니는 빙그레 웃으신다. 병석에 누워계실 때 찾아뵙지 못한 게 사뭇 죄송했다. 부디 영면하시길 빈다. 이제는 사촌 자매 중에 내가 왕언니가 되어버렸다. 오래기 전에 ‘사촌들 모여라’ 해서 밥이라도 먹어야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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