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봉사
진정한 의미의 봉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5.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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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독서 모임에서 토론을 하였다. 한 달에 두 번 공통 선정된 책을 읽고 순번으로 돌아가며 얘기를 나눈다. 

이번에 선정된 책은 ‘강봉희의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였다. 처음에는 죽음에 관한 책 제목이어서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손에든 순간 하룻만에 읽고 말았다. 정리까지 하고 나니 이틀에 완료한 셈이다. 무엇이 그토록 호기심을 갖게 했을까.

삶과 죽음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사이다. 숨을 크게 쉬지 못하면 죽음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향하는 길도 그리 먼 길만은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번씩은 넘어야 할 길. 어떤 죽음이 참다운 길인지 사례를 들면서 경험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시대 진정한 자원봉사 장례지도사이다. 젊어서 건축업을 하다가 사십 대에 암에 걸린 후, 제2 인생을 사는 셈이다. 사각지대의 불쌍한 주검을 수습하고 고인의 가시는 길 정성을 다해 거의 무료로 봉사하고 있다. 유가족도 찾지 않는 고독사의 주검 앞에서 사회에 던지는 경종도 보아야 했다. 특히나 내 눈을 크게 뜨게 한 글은 코로나19로 사망 처리를 두고 망설임이었다.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고 종일 고된 업무에 시달리는 중에 전달된 사체처리 문제도 나왔다. 고인이 된 부모를 확인하려고 외국에서 달려온 유가족은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멀리에서 겨우 보는 현실이다. 수의도 못 입고 환의 입은 채로 방역 처리된 비닐에 쌓여 화장장으로 옮긴다. 장례지도사로부터 유골함만 전달받는 현실에 세계가 경악한 팬데믹의 실상을 보았다. 

요즘은 장례문화가 바뀌어서 무조건 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상주의 약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장례지도사의 허점까지 살필 수 있었다.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 달 전에 친정 작은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호스피스 병동 입원실도 모자라 대기 상태였다. 예전보다 나아진 점은 방문간호를 신청하여 집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여든이 넘은 고인을 위하여 평소에도 순애보 사랑하면서 삼시 세끼를 직접 요리하여 대접했다. 작은어머니는 고인에게 마지막 음식 넘김과 임종까지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 드렸다는 사려 깊은 행동에 나도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상조회에 가입하면 세트 메뉴가 되어 장례지도사가 알아서 힘든 일을 처리하기는 한다. 나무상자 유골함으로 정했지만, 끈질긴 유족설득에 상주는 넘어가 버렸다. 친척들은 도자기 유골함으로 변경된 사실을 화장장에서 알고 보니 백만 원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이젠 상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진정한 의미의 봉사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아침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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