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포항과 한도교의 조건
성산포항과 한도교의 조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4.2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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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성산읍발전협의회 자문위원

고향에 돌아와 민박집을 운영한 지도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가신 고객들 중에는 싱가포르에서 온 David Wong과 그의 가족도 있다. 

그들은 1년 혹은 2년에 한 번꼴로 우리 집을 찾는다. 그들이 우리 집을 찾는 이유는 이곳이 그가 사는 센토사섬을 닮았기 때문이란다.

특히 이곳은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센토사섬보다 조용해서 좋단다. 일출봉 발아래 펼쳐지는 한도만의 철새도래지와 오밀조밀하고 그림 같은 바닷가 마을들, 그리고 코발트 빛 바다와 섭지코지, 지미봉 해안선과 멀리 한라산 끝까지 이어지는 나직나직한 오름들은 싱가포르에선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풍광이란다.

더구나 숙소에서 내다보이는 우도와 일출봉과 성산항의 매력은 여행의 격을 한껏 높여준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마지막 다녀갈 때 나누었던 말들이 잊히지 않는다. 성산포항과 한도교에 관한 이야기다.

한도교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시드니의 하버브리지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도교는 ‘No so glamorous’, 즉 그덧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했다. 제주도의 행정집행자가 성산항과 한도교의 가치성을 모르는 것 같다는 의미다.

시드니항을 세계 3대 미항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은 하버브리지다. 따라서 일출봉을 비롯한 우도, 한도만 철새도래지 등 성산포의 랜드마크들과 더불어 성산항을 세계적 미항으로 견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조건은 분명 한도교에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도교는 아직 그 기대에 못 미쳐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성산포항이 미항이 될 수 있는 조건은 항구의 규모가 커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작더라도 가장 성산포적이면 족하다. 시드니가 미항인 것은 ‘하버브리지’가 답이듯이 미항으로 가려는 성산포항의 답 역시 ‘한도교’에 있다.

그런 느낌으로 오랜만에 성산포항 주변을 산책했다. 생각을 바꿨더니 보이지 않던 주변의 모습들이 하나둘 보인다. 무심히 지나치던 성산항 한도교의 모습도 예상치 못했던 부분까지 드러난다. 길게 뻗은 교각이 녹슨 체 버려진 열차처럼 흉물스럽다. 이로 인해서 곁에 있는 성산포항의 이미지마저 흩트려 놓기에 충분하다.

한도교는 일출봉, 우도, 성산항 등 주변의 관광지와 해양레저를 즐기려 오가는 관광객들에게 성산포의 첫인상을 심어주는 현관이다. 부끄럽고 흉물스럽지만 한도교는 그런대로 성산포의 현관을 지키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는 한도교의 가치성과 중요성을 갈파해서 미리 대처하지 못한 지방정책의 어리석음을 반영한 현주소다. 얼마나 낯부끄러운 일인가.

한도교는 1990년 건설교통부가 건설한 갑문식 교량이다. 30년 전 정부는 제주도 제1차 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성산포항 내항인 한도만(灣)의 수위 조절용 갑문식 교량을 설치했다. 더불어 해양리조트 건설과 함께 세계적인 마리나 시설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그러나 그 거창한 구상과 계획들은 무슨 연유에선지 ‘허멩이 문세’가 되고 말았다. 오로지 홀로 남은 한도교만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성산포항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성산포항 진입도로 확장공사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제주도 발표문을 접했다.

사업 명칭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의 주된 목표와 방향이 아직도 ‘진입도로’라는 단순한 행정의 속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성산포항을 미항으로 조성코자 한다거나 또 그를 견인할 한도교에 대한 애정도 보이지 않아서다.

1960년대 말 성산포항을 세계항의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며 대통령까지 다녀갔던 과거를 잊지 않았다면 또는 제주도 제1차 종합개발계획의 의지를 잃지 않았다면 성산포항을 잇는 한도교가 성산포는 물론 제주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성산포항 진입도로 확장공사를 추진함에 앞서 지역민의 의견, 전문가들과의 폭넓은 토론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No so glamorous’라고 한 외국인의 충고가 다시 한 번 곱씹혀지는 시간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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