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절정은 낙화 직전이다
꽃의 절정은 낙화 직전이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2.04.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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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산책길, 구름처럼 하이얗게 피었던 전농로 벚꽃들이 다 어디 갔는지. 

꽃이 진 자리엔 파란 새잎이 무성하다.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고. 가장 극적인 낙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꽃말이 순결, 담백이어서 그럴까. 벚꽃은 언제나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한다.

문득 가슴이 찡했다. 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마중하느라, 길바닥에 하얗게 누운 꽃잎을 조심조심 밟고 걸었다.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毒杯)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 같이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한순간에 불꽃 같은 정사(情死)의 의식으로 이별을 고한다. 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꽃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벚꽃뿐이랴. 세상의 이별이란 게 다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이별은 어렵다. 그래서 이별의 순간, 미련을 갖고 매달리는 자만 추해지기 십상이다.

조직을 떠나거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 스스로 알고 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가능한 빨리 때를 알아 훌훌 털고 일어서지 못하면 뒷말이 남는다.

떠나는 사람에겐 언제든 아쉬움과 억울함이 가득할 수 있다. 지난 5년 집권한 더불어민주당 정권도 그동안 열심히 꽃을 피워왔다고 자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꽃이 져서 떠나야 한다니 마음이 크게 상했을 것이다.

최소한 20년은 꽃을 피우리라 했는데, 5년 만에 지고 말았으니 심정은 복잡할 게 틀림없다. 10년을 꽃 피워도 서운함은 남을 텐데 겨우 5년이니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집권 민주당은 대통령 자리는 놓쳤어도 여전히 입법부에서는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여유를 갖고 평소와 달리 돌발 행동을 하거나 비이성적이 돼선 안 된다.

▲모든 자리란 유한(有限)한 것이다. 대통령이란 직도 온갖 화려함 속에 오르지만 더없이 쓸쓸한 가운데 내려오게 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대통령이 되면 사형대로 가는 죄인의 기분을 느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것이 대통령직이다.

우리는 대통령이라면 엄청난 법률적 권한이나 정치적 권위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런 것은 가변적인 것이어서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는 예도 많다.

어느 대통령, 어느 정권이나 취임·집권할 때는 빛나는 영광이었어도 퇴임·실권할 때는 빛바래기 마련인 게 보통이다. 심지어 퇴임 후 교도소를 가는 전 대통령도 얼마나 많았는가.

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쳐도 정권이 20여 일 남은 마당에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이 ‘검수완박’ 법 개정에 나서 국민을 불안케 하는 건 한마디로 ‘입법 폭주’다. 국민의 의견을 더 수렴하는 것이 옳다. 그런 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

▲벚꽃이 피고 지기까지는 불과 열흘도 안 된다. 그야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러나 모든 꽃은 피어날 때 이미 질 것을 알고 있다. 꽃이 져야 비로소 그 자리에 열매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꽃의 절정은 낙화(落花) 직전이다. 필 때보다 질 때 더 아름다운 생멸(生滅)의 미학이랄까. 미당 서정주가 ‘아름다운/ 꽃이 질 때는/ 두견새들의 울음소리가/ 바다같이 바다같이/ 깊어만 가느니라’고 노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 번뿐인 우리 삶과 세상사 원리도 이와 같다. 미리 유서를 써보면 삶이 조금은 경건해진다고 한다.

꽃이 지는 건 죽는 게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우리 대통령사(史)도 이젠 대통령의 아름다운 창조를 보고 싶다.

특히 꽃이 낙화 직전에 아름다움이 절정이듯이 대통령도 퇴임에 이르러 더 아름다워야 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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