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국어 배우기 위한 대표적 학습서
조선시대 중국어 배우기 위한 대표적 학습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4.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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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습(童子習)’

명나라 주봉길 편찬한 교학서
목판으로 간행됐던 책 ‘방각본’
서당에서 교재로도 주로 사용
‘동자습(童子習)’(19세기초 목판 방각본) 표지.
‘동자습(童子習)’(19세기초 목판 방각본) 표지.

며칠 전 오랜만에 우리 책방을 찾아주신 귀한 손님과 담소를 나누던 차에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는 단골손님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전에는 종종 오름도 같이 오르고 때로는 소주도 한잔하는 다들 잘 아는 사이인지라 자연스레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하는 시간을 가졌다.

간만의 즐거운 자리를 파하고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전에 말씀 드린 바 있는 인터넷 라이브 경매가 한창이었다. 막걸리도 술인지라 조금은 알딸딸한 정신에 들여다보니 예의 묻지마 경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은근히 눈길이 가는 책들도 있었지만 ‘음주 후 하면 안 되는 건 운전뿐만이 아니다’며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책들 가운데서도 자꾸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놈이 있었다. 군데군데 펼쳐 보여주기는 하지만 표지 제목도 흐릿하고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데다 응찰해야 하는 가격도 상당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었지만 놓치면 후회할 것만 같은 조바심에 결국 응찰하고 말았다. 그게 뭔지도 모르니 후회할 것도 없는 거였지만 ‘인연이 있는 책’이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것도 괜찮은 인연일거라고…

조선은행권 100원짜리 지폐.
조선은행권 100원짜리 지폐.

그 주문이 통했다. 오늘 도착한 박스를 열어보니 나를 조바심 나게 했던 책은 바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목민서 ‘목민심감(牧民心鑑)’의 저자인 중국 명나라의 주봉길(朱逢吉)이 1404년 경 편찬한 초학자용 교학서 ‘동자습(童子習)’이었다. 이 책은 원래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사친(事親),효감(孝感),사장(事長), 향학(向學), 예빈(禮賓), 사군(事君) 등 17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2권(卷) 1책(冊)짜리 책이다. 

조선 초기에 이 책을 언해한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에 실린 성삼문(成三問)의 서문에 따르면 ‘배우는 자가 먼저 정음(正音) 몇 자만 배우고서 다음으로 이 책을 보면, 열흘 정도면 중국말도 통할 수 있고 운학(韻學)도 밝힐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한 학습서로 이용했고, 한이학(漢吏學)과 역학(譯學)의 취재(取才) 과목이자 경연(經筵)에도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책이기도 했다.

이번에 입수된 판본은 중국판이나 직해본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민간인이 판매를 목적으로 목판으로 간행했던 책인 방각본(坊刻本)으로, 이 책이 간행된 200여 년 전 당시 대표적인 출판업자였던 전이채(田以采)와 박치유(朴致維)가 간행한 목판본이다. 본문과 함께 부록인 권학문(勸學文)이 수록되어 서당에서 교재로도 많이 사용한 책으로 현전하는 목판본에는 모두 한글 현토가 달려 있다.

책의 이곳저곳을 살피다 보니 뜻밖의 소소한 기쁨을 만날 수 있었으니, 책갈피 사이에서 1946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조선은행권 1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비록 상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의 왜색을 벗어던진 첫 우리나라 지폐 속 무궁화 무늬가 돋보이는 놈이라 무척 반가웠다.
마침 오는 5월에 제주시소통협력센터와 동네책방들이 함께 하는 질문도서관 행사의 일환으로 우리 책방에서는 ‘헌책 속 사연과 책갈피 등을 전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그간 모아 둔 다양한 책갈피 속 우리네 삶의 흔적들을 소개할 예정이오니, 시간 되시는 독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동자습(童子習)’ 중 부록 권학문(勸學文) 첫 부분.
‘동자습(童子習)’ 중 부록 권학문(勸學文) 첫 부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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