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심상(心狀)
어느 날의 심상(心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4.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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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서류가 잘못됐는지 보완해야 한다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틀림없이 하라는 대로 첨부했는데 이상하다. 고개만 갸우뚱해진다. 쉬운 일이라 여긴 게 실수였나 보다.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부닥치면 짜증부터 올라온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해결방법을 궁리해 보지만 뾰족한 수도 없다. 컴퓨터를 열어서 파일 확인도 하고, 담당자와 통화할 시간을 계산해보면서 밤늦도록 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니 무슨 궁상맞은 꼴인가. 집착심이 발동하여 생긴 부질없는 고민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꿈을 꾸며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눈을 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다니 무슨 조화 속인지 알 수 없다. 다시 전날 일이 마음에 걸려 다시 컴퓨터를 열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담당자의 업무 시간까지는 네다섯 시간이나 남았다. 아침 기운을 받고자 창문을 열었다. 여명이 천지에 드리우고 있다. ‘오늘은 좋은 날’ 하고 중얼거리고 나니 선택의 결과는 오늘에 나타날 일 같다. 

사람마다 일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간단한 일도 남의 손을 빌려서 처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유능한 비서를 거느린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 해냈을 때 성취감과 자신감은 배가 된다. 어려운 일일수록 감흥은 더 크다. 도전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라 하겠다. 세상일이 선택과 도전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생동이다. 

업무시간에 맞추어 전화번호를 눌렀다.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름만 댔는데도 알아차린다. 파일이 안 열리니 다시 보내 달라는 요구다. 내 컴퓨터에서는 열리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전화 속 목소리는 친절하면서도 차분했다. 차근차근 일러주는 대로 하다 보니 첨부된 이미지 파일이 문서 포함에 체크가 안 되어 있었다. 덕분에 현상만으로 완료라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듯하여 마음이 뿌듯하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도 있겠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펄떡였다니, 마음 수양이 안 되었다는 증거인가. 이런 경험은 다른 사람들도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경우 같은데, 고까짓 것도 못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 순간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다. 

한 가지에 걸리면 정지되어버리는 듯한 이 심정, 집착이라 해도 좋다. 의지가 깃든 심상(心狀)을 누가 탓하겠는가. 어떤 일이든 성장에는 과정이 있는 법, 어제보다 발전한 오늘이 되었으니 만족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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