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절벽으로 간 아들
어머니와 절벽으로 간 아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2.04.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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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새벽 제주시 애월읍 해안도로. 40대 운전자 A씨가 몰던 하얀색 아우디 승용차가 13m 높이 해안절벽 아래로 돌진했다.

A씨는 이 승용차에 치매를 앓는 80대 어머니를 옆자리에 태우고 있었다.

추락후 A씨는 다친 채로 스스로 절벽 위로 올라와 구조 요청을 했고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런데 경찰이 CCTV와 목격자 등을 조사한 결과 A씨는 추락 전 해안 절벽 맞은편 주차장에서 어머니를 태운 차에서 내려 20분 정도 주변을 배회했다.

그러다 차를 타고 중앙선을 넘어서 그대로 절벽으로 돌진해 추락했다. 

경찰은 이 사고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A씨를 존속살해 등 혐의로 입건했다. A씨는 음주상태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렇다면 간병 ‘가족 살인’ 사건인가.

앞으로 조사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A씨는 지난해 말부터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함께 살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병환을 앓는 부모를 오랫동안 수발해 본 자식들은 다 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간병에 지친 나머지 저지르는 ‘가족 살인’이라는 여러 정황이 나타나면서 가슴이 아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해 100명 가깝게 ‘가족살인’ 발생하고 있다. 그 상당수가 간병 가족살인이다.

2019년 한 해 동안에도 가족살인이 82건 발생해 전체 살인사건의 약 10%정도를 차지했다. 

애월읍 해안도로 사건은 큰 틀에서 보면 치매국가책임제라는 우리 사회복지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불행한 사건이다.

A씨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 정황이 슬프고 안타깝다.

 

▲지난 3월 31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아버지 살해 혐의로 기소된 22살 청년 B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외동아들인 B씨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는 데 아버지가 2020년 9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대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A씨는 지난해 4월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B씨는 퇴원후 처방약을 주지 않고 치료식을 정량보다 적게 줬고, 일주일 뒤부턴 홀로 방치해 5월 아버지를 영양실조 등으로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B씨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살기엔 경제적으로 어려워 돌아가시도록 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B씨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아버지를 돌봤고 난방비는 물론 쌀 살 돈도 부족해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간병이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이른바 간병 ‘가족살인’ 사건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일 청년 B씨와 같이 생활비도 부족하고 간병비가 없는 상황에 당신이 처한다면 과연 당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또 애월 해안도로 절벽으로 간 아들 A씨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긴 병에 장사 없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누구도 A, B씨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병 돌봄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가족 누군가는 일을 그만둬 직접 간병을 하고, 누군가는 빚을 내어 간병인을 고용해야 한다.  

그 간병비는 1일당 12만원해서 한달에 360만원정도 든다. 이렇다보니 ‘간병 파산’이란 말까지 나왔다.

새 정부가 가족 한 명이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는 간병의 구조. 그로 인해 꿈과 미래를 포기하는 이들의 아픔을 살펴주었으면 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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