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지사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제주도지사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 김현종 기자
  • 승인 2022.03.30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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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61 지방선거 풀뿌리 일꾼을 자임하는 이들의 말의 성찬이 펼쳐진다.

최대 관심사인 제주도지사 선거 후보자들의 출마의 변은 현란하고 거침없다.

온갖 미사여구와 현학적인 표현으로 포장된 각오와 다짐이 마구 쏟아진다.

도민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새로운 도민정부 시대”(오영훈 국회의원).

갈등과 반목의 해소, 소통과 타협을 통한 도민 통합시대”(김태석 의원).

위대한 제주시대를 향한 새로운 도전”(김용철 공인회계사).

관료자치로 변질된 풀뿌리자치 주권을 도민에게 돌려놓겠다”(문대림 전 JDC 이사장).

성장의 과실이 모든 도민에게 골고루 배분되는 포용 제주경제”(문성유 전 캠코 사장).

혼돈의 늪에 빠진 제주, 대개혁으로 새 시대를 열겠다”(부임춘 전 제주신문 대표이사).

열정과 용기로 더불어 잘사는 제주 경영”(정은석 전 한국노총 KB국민은행지부 지회장).

도지사의 제왕적 권한을 도민에게 돌려드리겠다”(부순정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풀뿌리 주민자치를 꽃 피우겠다”(박찬식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앞으로 추가적인 출마 선언이 예정돼 있으니 후보가 10명을 훌쩍 넘는 난립 수준이다.

도민의 최대 이익 확보를 위한 검증의 극대화와 냉정한 선택은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도민들은 경험칙 상 상당수 후보의 말은 흰소리라고 단언한다.

동네심방 인정받기 어려운 사회라지만 진정 능력과 자질이 공복으로서 필요조건을 충족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거나 출마 자체의 진정성이 미덥지 않은 후보가 많다며 핏대를 세우는 도민이 적지 않다. “사람 좋은데”, “똑똑하긴 한데하는 미련 섞인 평가는 양반 축에 속한다.

깜냥이 안 되는 후보가 연일 사탕발림으로 표를 구걸해 피곤하다는 하소연은 괜한 엄살이 아니다. 가치관이나 호불호에 따라 뻔뻔하고 비위에 거슬릴 지경이다. 정말 아니올시다인데 제주특유의 괸당문화에 얽혀 속내를 발설할 수 없다면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를 피할 수 없다.

정녕 저질 후보들의 언술이 혼란스럽고 귀찮다면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칼럼을 참고하시라. 제목은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2018922일자 경향신문).

김 교수는 과학자 친구의 과거 연애편지를 접한 후 다짐한다. 연애편지를 쓰게 된다면 영민이란 이름을 한 글자로 줄여 이라고 자칭하지 않으리라.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지 않겠노라. ‘민은 이렇게 생각한답니다와 같은 문장을 쓰지 않으리라. ‘사랑하는 나의 희에게, 희로부터 애달픈 사랑을 듬뿍 받고 싶은 민으로부터와 같은 표현은 결코 구사하지 않으리라.

김 교수가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왜 그런 느끼한 표현을 썼느냐고 따져 묻자 친구는 과학자다운 평정심을 잃고 고성을 질러댔다. 김 교수는 친구의 난동이 정체성의 질문이란 위기상황에서 제기된 것임을 지적한다. 친구가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파괴하려 했다는 사실을 김 교수는 통찰한다.

급기야 김 교수는 추석날 친척이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때 대처법을 내놓는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답하라는 식이다.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하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하니라고 묻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물으란 것이다.

김 교수는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이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는 유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지방선거 후보들이 도민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귀찮게 치근덕대면 물어라.

도민이란 무엇인가”, “일꾼이란 무엇인가”, “주인이란 무엇인가”.

도지사 후보가 제법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으면 받아쳐라.

선거란 무엇인가”, “제주란 무엇인가”, “도지사란 무엇인가”.

대화 과정에서 후보들이 과거를 부정하고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파괴하려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유권자 당신은 선거 때면 시달리던 강박과 체증이 싹 가시는 후련함을 맛보리라.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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