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책임
선택과 책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3.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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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길을 걷다 보면 고만고만한 갈림길이 놓여 있습니다. 항상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입니다. 어느 길을 갈까, 어느 길이 나에게 더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해 줄 것인가. 자분자분 봄비가 내리는 주말, 어릴 적 읽었던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찾아 읽었습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로버트 프로스트, 피천득 역, ‘가지 않은 길’에서)

결국은 한쪽 길을 선택해서 걸어갑니다. 가지 못한 저쪽 길에 대한 미련은 오래 남습니다. 저 길은 어떤 풍경일까.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저 길가에는 어떤 집들이 있고, 어떤 꽃들이 피어 있을까. 저 길의 끝에 이를 즈음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이 길이 아니라, 저 길을 걷는다면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렇듯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길을 걸을 때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시험마저도 오지선다 선택형이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일부터 인생의 반려자를 택하는 일까지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얼마 전 끝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들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시의 내용처럼 노란 숲속에 난 갈림길에 서서 반대편 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한쪽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이겠지요. 

일단 길을 선택하면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내가 그 길을 선택했지만, 그 길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수동적으로 걸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분명히 엄청나게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다르기에 매우 당황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기대한 것과도 너무 달라 분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실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우리가 걷는 길에 웅덩이가 파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 길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함께 걷는 일행이 선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걷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길의 탓이 아닙니다. 함께 걷기로 했으면 함께 그들에게는 공동의 책임이 있습니다. 선택의 과정이 공정했다면 그 결과에 따라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흔히들 ‘공동 책임은 무책임’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라는 말도 있다지요. 내 선택이 아닌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는 말로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양이면 함께 걷는 일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길을 관리하는 이들은 그 길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걷는 이들이 불편하지 않게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선택받은 것이 불편함도 괴로움도 무작정 감내하겠다는 의미만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길을 걷는 이들에게 선택의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도록, 그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길의 끝에서 아쉬움이 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시의 마지막 연을 읽어봅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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