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휴식
자유를 위한 휴식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3.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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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한적한 일요일이다. 오늘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주위에 소통하고 있는 SNS를 포함하여 세상을 향한 일은 잠시 멈추고 집을 나섰다. 사색하는 것을 좋아해서 오랜만에 석굴암을 가기로 마음먹고 운전대를 잡았다. 

봄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롯이 햇살을 받으며 입구에 들어섰다.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하는 숲도 나무들도 새 옷을 갈아입었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는 것을 실감하며 걷는 발자국 소리마저 정겹다. 

들숨날숨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걸어가는 길, 수직으로 펼쳐진 기암절벽 위에 섰다. 내려다보기도 힘든 험난한 바위틈에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온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휘어 돌며 비뚤거린 채 서서 나를 반가이 맞는다. 나무를 보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비범함이 느껴진다. 긴 세월 거센 비바람에 수난을 겪었는지 온몸이 덕지덕지 상처투성이다. 마치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신 부처님을 보는 듯한 위엄이 느껴진다. 부처님은 석가모니 한 분인 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부처님이 계시다고 들었다. 이렇게 나무 형상으로 득음을 전하는 부처님도 계시는가 보다. 바라볼수록 신비스럽고 내게 무언의 음성으로 속삭이는 듯하다. “현재의 고통을 받아들여라” 나의 고통이 백년이라면 나무가 전하는 고통은 몇백년도 넘는다. 그만큼 비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수직 절벽에 몸을 의탁한 채 의연한 자세로 내 마음에 와 닿는 울림은 그 어떤 소리보다 강하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메시지가 귓전에 아른거린다. 누구나 인생행로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고통으로 힘겨울 때가 있다. 

모든 고통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를 낮추는 심성이 나를 자라게 한다
오늘은 다만
그 고통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조금 모자랄 뿐이다

석굴암을 친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가 아쉬워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미술관을 찾았다.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주변 풍경에 눈길을 던지며 오후의 행복을 만끽하였다.

여느 일요일과 달리 오로지 사색을 하며 휴식을 즐겼다. 내심 무의미한 주말을 보내면 어떡하지 라고 집을 나서기 전 잠깐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고민한 것도 무색할 정도로 휴식다운 휴식을 즐겼다. 평일과 똑같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올가미가 될 수 있었는데 멋진 일탈이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 셈이다.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를 위해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삶이라면 험난한 세상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 산다는 것은 별게 아니다. 
남에게 짐이 되지 않는 자력이 최선이다. 살아서 맞이하는 고통, 그것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주는 체험이다. 

그런 생각이 행복을 불러 모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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