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마중
봄 마중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3.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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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영등달이어서일까? 바람이 휭휭거린다. 유독 봄이면 목감기를 한차례 앓고 지나야 하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생강에 배를 넣어 달여 마시고 댕유자를 끓여서 먹어 보지만 쉬이 물러나지 않는다. 오미크론 증상이 인후통으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내내 몸 사리고 지내다가 불현듯, 봄소식이 궁금해진다. 바람은 불지만, 햇살이 쨍하게 내리는 바깥을 보며 오늘은 걸어보기로 했다. 외투를 걸쳐 여미며 아파트를 나서 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이 핀 화분 한두 개 정도는 있어줘야 할 듯싶어 때때로 들르던 동네꽃집이 있었다. 꼭 꽃을 사진 않아도 오며 가며 눈요기도 하고 주인과 대화를 하며 알게 되는 꽃의 정보도 쏠쏠해서 좋았다. 오래 알고 지내던 그 꽃집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한 게 생각나 축하 인사도 드리고 꽃도 구경할 겸 길을 잡는다.

허리가 점점 굽어지면서 자연스레 흙을 보게 된다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도 고개를 숙여 본다. 멀리 한라산을 보며 걷다가 고개를 숙이니 눈에 들어오는 잔잔한 봄의 소식. 잠시 길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앙증맞은 모습을 하고 있는 개불알꽃에게 인사하고 귀부인이라도 된 양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자운영에게도 눈길을 건넨다.

춥다고, 감기 조심 코로나 조심으로 너무 집 안에서 움츠려만 지냈나 보다. 추운 날들을 꼬옥 껴안고 봄날을 기다렸을 풀씨들을 그려 본다. 시리고 외로웠을 텐데 굳건하게 땅을 뚫고 나와 새싹을 내밀고, 심술 맞은 찬바람도 견디며 굳세게 꽃을 피운 뚝심이 가상하다. 손으로 만지면 다칠까 걱정되어 눈짓으로만 어루만진다.

근처 아파트 화단에는 부지런한 이웃이 잡초를 뽑으며 아직 새싹만 올린 꽃들이 다칠까 봐 주위에 잘잘한 돌들을 주워 경계를 긋고 있다. 척박한 땅인데 어디에서 구했는지 부드러운 흙이 부러움을 부른다. 인사를 건네는 나에게 꽃이 피면 지나가는 이웃들이 모두 보면 좋겠다면서 환하게 웃는다. 봄 햇살이 내려와 그녀의 웃음을 하얀 꽃으로 펑펑 바꿔놓는다. 꽃집에 가기도 전에 어떤 꽃보다 예쁜 꽃을 만난 듯하다.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시 한 편을 끄집어내어 더욱 가까워진 봄 마중을 해본다.

 

꿈속에 꿈꾸던 내 사람아

이제는 혼수의, 인사불성의 긴 잠에서

죽이는 꽃들의 빛깔로, 향기로, 하늘거림으로

아픈 데서부터 깨어나

한 치 밖에 있는 봄 구경을 제발 좀 하여라.

단 하루만이라도 봄빛으로 눈 떠 보아라.

하늘빛이 시리도록 맑고 흰 눈동자를

,,펑 꽃 터지듯 떠 보아라.

- 강우식의 봄 기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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