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깜깜이’ 책에서 발견한 선거의 의미
60년대 ‘깜깜이’ 책에서 발견한 선거의 의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3.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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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소감(選擧所感)’(1960년대 초)

제목·판권 없는 48쪽짜리 선장본
4·19 이후 제2공화국 초기 간행 추정
선거에 대한 감회 44조에 맞춰 적혀
'선거소감(選擧所感)'(1960년대 초) 표지.
'선거소감(選擧所感)'(1960년대 초) 표지.

온 세상이 코로나로 정신없는 시절이라 우리 책방을 찾은 독자들의 발길도 아주 뜸해졌다. 하루 종일 혼자 덩그마니 있다가 가는 날도 드물지 않을 정도라서, 요즘은 그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인터넷 라이브 경매장에 우리 책방에 필요한 게 없나 살펴보는 일이 잦은 편이다. 모니터를 통해 보는 거라 직접 만져보는 것보다는 한계가 있지만 종종 괜찮은 책을 만나기도 하기에 쏠쏠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경매사의 진행 방식이 각기 달라서 어떤 곳에서는 책의 제목이나 내용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쪽 업계 은어(隱語)깜깜이또는 묻지마로 응찰하는 경우도 있다.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지만 이게 또 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항상 웃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놈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한 무더기의 책이 경매에 나온 게 있었는데, 그 안에 조선후기의 한의사 황도연 선생의 방약합편이 포함돼 있었다. 다른 책들은 제목도 없고 그 내용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 책 한 권을 보고 일단 응찰해서 낙찰 받았다. 며칠 후 도착한 책들을 살펴보니 그 책 외에도 재미있는 책들이 제법 있어서 비교적 성공적인 응찰이었다. 오늘은 이제 막 제20대 대선이라는 아주 중요한 선거를 치렀으니 그 중에서 선거와 관련된 책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바로 선거소감(選擧所感)’이라는 48쪽짜리 선장본으로, 제대로 된 표지나 제목도 없고 판권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깜깜이 책이다. 그나마 맨 마지막 부분에 김남식(金南湜)’이라고 지은이를 밝혀놓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소감(選擧所感)' 제목이 보이는 첫 부분.
'선거소감(選擧所感)' 제목이 보이는 첫 부분.

어화여보 여러분들 이내한말 들어 보소로 시작되는 이 책은 마산(馬山)이라 김주열군(金朱烈君)’이나 정당한 선거로써 제2공화국을 세워 학생 원()도 풀어주고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3·15 부정선거를 거쳐 4·19 혁명이 일어나고 제2공화국이 들어서는 1960년대 초 어느 시점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선거에 대한 지은이의 감회를 대부분 우리나라의 고유 운율인 44조에 맞춰 적은 글로 출판된 지 60여 년인 지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글로 가득 차 있다.

'선거소감(選擧所感)' 지은이(金南湜)가 보이는 끝 부분.
'선거소감(選擧所感)' 지은이(金南湜)가 보이는 끝 부분.

지은이는 잘 살고 못 사옴이 정치(政治)함에 달인 백성(百姓), 잘 뽑으면 잘 살거요 못 뽑으면 못 살거야, 그 뉘라서 모르리오라면서, ‘공민권(公民權)이 있음으로 선거를 하게 되고, 선거를 하므로써 민주주의 실시된다고 단언하고 있다. 또한 출마한 사람이 어찌하야 출마했나 그 목적이 무엇인가, 물질을 위함인가 명예를 위함인가, 정말 민족 위함인가 멸사봉공 정신 있나, 어떤 경험 쌓이었나 어떤 평판 가지었나등을 잘 살펴야하며 다 같이 전 주민이 태평가를 불러가며 마음 놓고 잘 살게 할 그 인물을 선출키로 일월(日月) 같은 그 지혜와 산악(山岳) 같은 정신으로 넓이넓이 생각하며 깊이깊이 연구하자고 노래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 모두 각자 심사숙고한 끝에 선택한 후보들이 자고로 인재를 쓸 때 성()하얐다는 지은이의 말씀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는지 언제쯤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선택은 늘 어렵다.

'선거소감(選擧所感)' 중 내용 일부분.
'선거소감(選擧所感)' 중 내용 일부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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