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씨앗
말의 씨앗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3.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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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말의 씨앗은 어떻게 뿌릴까. 농부는 씨를 뿌리며 고운 흙을 덮을 때 예쁜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만개한 꽃이 하늘을 향해 뒤덮으면 벌과 나비가 찾아들다 열매를 맺는다. 우리 삶도 자연의 법칙을 닮았다.

막내 손자가 초등학교 가입학식이 있어서 이틀 밤을 같이 했다. 펜데믹으로 축소된 생활과 가족 간 영상통화가 늘었다. 우리는 언제 만날 것이냐는 성화에 못 이겨 움직였다.

손자는 어휘가 많이 늘었다. 배밀이에서 어린이집 가방 메고 뒤뚱거리던 아이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남부터 강하게 안기며 같이 살고 싶다는 애교도 덧붙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문안 인사를 하며 내 팔에 안겨 드러눕는다. 사랑의 언어가 오가다가 할머니, 왜 저한테 전화할 때마다 장군이라 했어요? 장군멍군 뜻인가요.” 순간 상처받았는지 반추한다.

손자는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먼저 인사하려는 쟁탈전을 벌였다. 처음엔 장군은 의젓해야 한다면 울음을 뚝 끊기도 하였다. 뼈대도 굵고 언성도 힘찼기에 애칭으로 장군이라 자주 불렀다. 개구쟁이의 누나와 싸우지 말라는 나의 바람이 섞인 칭찬이었다. 손자의 질문에 생후 두 달 때의 일이 스친다.

무더위가 연속이던 어느 날, 아들과 며느리는 급한 외출을 하였다. 나는 잠이 든 손자의 두 시간 육아를 맡았다. 모유를 미리 짜둔 젖병도 냉장실에 몇 개 넣어두고 아기 구덕을 흔들어주면 된다 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바람이 통하는 거실로 아기 구덕을 옮겼다. 한 시간이 지나자 머리를 양쪽으로 돌려대며 기지개도 켜려 한다. 평소 같으면 일으켜 안아주고 팔과 다리도 꾹꾹 눌러주고 기저귀도 갈아줄 터인데 아기 구덕을 살살 흔들었다. 제발 한 시간 만 더 버텨 달라며 기원하는 마음도 들어있다. 다자녀가 흔하지 않을 때여서 나의 지원 아래 낳은 셋째 손자이다.

며느리는 예정된 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만 의식하고 있다. 나도 배게 대면 오수에 빠질듯하다. 허리를 펴지 못하게 흔들 즈음 손자는 깨어나고 며느리도 왔다. 많이 울어 힘들었을까 봐 죄송하다는 말을 앞세웠다. 그때부터 막내 손자에게 장군이라 불렀다.

가입학식 하는 날 운동장에 들어섰다. 선생님이 대여섯 가지 질문을 하자 손자는 또박또박 말하고 있다. 옆줄에 서 있던 동기생이 유치원 친구인가 보다. 두 눈이 마주치자 얼마만이야. 보고 싶었어.’라며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고 달리면서 술래잡기 놀이하고 있다. 막내 손자는 소심했던 그 친구조차 좋은 사이로 바꿔 놓았다.

부메랑이 되어 날아간 장군이 될 것이란 말의 씨앗은 칭찬받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손자는 장기판 놀이도 알고 있다. 한마디 말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아침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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