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개·나·리!!!”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2.03.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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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한결 부드럽다. 얼었던 땅이 녹아 성글성글해지고 햇살이 따사롭다.

올해는 꽃소식도 예년보다 상당히 빠르다. 개나리는 평년보다 6일, 진달래는 12일 일찍 필 것이라고 한다.

이번 주말 11일 서귀포에서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고 진달래는 13일부터 개화할 전망이다. 온 가지에 꽃송이가 만발하는 건 그때부터 1주일~열흘쯤 지난 다음이라 하니 이달 하순이면 봄꽃이 절정에 달할 것이다. 

뿐이랴. 곧 유채꽃밭도 미풍에 넘실거릴 것이다. 개나리는 유채꽃과 함께 노란색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봄꽃이다.  샛노란 복수초, 노랑 민들레도 있다.

언 땅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른 봄에 피워내는 꽃에는 노란색이 많다. 추위를 이겨낸 빛깔이다. 그래서 노란색을 ‘희망의 색’으로 이야기하는 걸까.

▲이런 얘기도 있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분이 고국에 와 고향집  개나리 두어 가지를 꺾어 돌아가서  집 앞마당에 심었는데, 여태 꽃 피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사연이다.

“시드니의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첫해라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한국처럼 추운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를 심어도 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 엄동(嚴冬)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春化現象)’이라 한다. 개나리는 물론이고 진달래, 튤립, 히아신스, 백합(百合), 라일락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꽃만 아니다. 보리도 가을에 파종해 설한(雪寒)을 넘긴 가을보리가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보다 맛이 있다고 한다.

이런 춘화현상이 꽃이나 보리만일까. 세상사가 모두 그러하다.

▲오늘로 대선 D-2일.

‘춘화’는 대선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여야 어느 후보 측이 얼마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자기 팔다리를 자르는 희생을 감수하고 새롭게 혁신했느냐, 그것이 꽃을 피우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이른 봄에 피워낸 꽃은 작고 연하지만 생명력은 강하다. 잔설이 채 녹기도 전에 일제히 피워올리는 고운 봄꽃들. 이 기운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모든 게 뿌린 대로 거둔다. 올 봄, 봄꽃들의 꽃눈이 이미 지난해 잉태됐다는 것을 알고 나면 세상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시인 이영식은 ‘꽃의 정치’에서 “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중략) “봄날 내내 범람하는 꽃불을 봐/ 꿀벌은 꽃이 치는 거지/ 벌통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며 “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 들 그게 며칠이나 가겠느냐”고 한다.

정치도 진실이 없으면 피어나지 않는 꽃과 같다는 말이리라.

▲개나리는 생장속도가 빠르다.

추위와 공해에 강해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토종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명(Forsythia Koreana)에도 한국을 뜻하는 ‘코리아나’가 들어가 있다. 영어로는 노란 꽃이 황금 종 같다고 해 ‘골든벨(golden bell)’이라고 불린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우리의 역사와 정서를 품고 있는 ‘우리나라 꽃’이다. 

요즘과 같은 코로나19 시대엔 옛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개나리’가 한 때 건배 구호로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더 오래전의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대신 ‘개·나·리’가 뒤를 이었다.

‘개(계)급장’ 떼고, 나이 잊고, ‘릴렉스’하자는 뜻으로 ‘확’ 기분을 풀자는 회식용 건배 구호였다. ‘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라며 ‘진·달·래’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봄. 개나리 피는 날에는 좋은 이들과 함께 ‘개·나·리!!!’. 

골든벨을 울렸으면 좋겠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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