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가 뭐야? ‘자·지’가?”
“야, 자지도 모르냐?”
초등학교 5학년(1961) 초겨울쯤 학교 마치고 교문을 나설 때, 앞서가던 여학생 둘이서 나누던 대화이었다. 그들 바로 뒤 교문모퉁이에서 나오는 내 귀에까지 들렸다. 부끄러움이 들켰는가, 그들은 빨개진 얼굴로 도망치듯 큰길을 가로질러 갔다. 교문 입구 한쪽에 입간판이 있었다. ‘불조심 강조 기간’이 쓰여 있었고, ‘자: 12월~일, 지: 12월…일’이 행을 바꾸어 쓰여 있으니, 세로로 ‘자·지’로 읽힌다.
‘자(自)·지(至)’는 시공(時空)에서 ‘~부터(from)…까지(to)’의 새김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 한자설문(說文) 연구에 빠져들어서였다. 한자설문이란 ‘한자의 구조와 본디의 뜻을 설명함’이다. 예컨대, 밝음(明)은 ‘낮에는 해가 있으니 밝고, 밤은 달이 밝힌다.’ 또한, 자(自)는 눈(目) 위에 손가락(丿별)으로 ‘자신의 콧등’을 가리키는 상형이어서, ‘코(鼻비)’의 한자까지 형성케 된 것이다.
자연(自然)의 연(然)을 설문한다. 연(然=月+犬+灬)은 개고기(月犬 연)를 불(灬) 위에서 굽게 되는 상황의 형성문자이다. ‘어째서 개고기를 구워먹게 되었나?’의 질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라는 답변이 나오고, ‘그러할 연(然)’은 당연(當然/마땅히 그러하다)과 개연(蓋然/확실치는 않으나 그럴 것 같음)의 어휘로 이어진다.
하늘·땅의 뜻과 현상(自然)에는 예부터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려니(然)’ 했었다. 자연(自然)은 ‘이런 현상(然)에서 비롯된(自from)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현상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하늘·땅 사이에 사람이 있어야 자연이다. 역설적으로, 자연은 사람에서 비롯되나, 사람 또한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자연에 맞춘 신선의 삶을 산 사람은 장자(莊子)이다. 학의 다리가 긴 것은 자연현상의 한 조각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鶴脛雖長학경수장) 자르지 말라(斷之則悲단지즉비). 혹은,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아도(鳧脛雖短부경수단) 늘려 주려 말라(續之則憂속지즉우)<장자>. 요즘 선거정국에서 국민은 무엇이 부자연스러운가를 듣지 않아도 알고 있다. ‘말로는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plausibility)’도 국민들은 듣는 순간 구분할 줄 안다.
동대문은 흥인문(興仁門)이다. 인(仁)을 돋우어 일으킴(興)을 조선은 우선했다. 둘(二) 이상의 사람(亻)이 서로 어우러져 삶(citizenship)이 인(仁)이다.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서고자 할 때에는 남부터 세워주고(己欲立而立人), 내가 이루고자 할 때에는 남부터 이루게 한다(己欲達而達人)<논어>. 소위 ‘내로남불’이 아니다.
베트남전투에서 화염방사기가 쓰였었다. 적군을 태워죽이기 위하여 동굴 속으로 불꽃을 쏘아댄다. 동굴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자신이 쏜 불꽃에 거꾸로 자신이 태워진다. 역풍현상(backfire)이다. 특히 선거전에 자주 일어난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음까지 국민들은 뚫어지게 알고 있다.
정치(政)와 가르침(敎)은 ‘바탕마련(攵복)’을 공통으로 지닌다. 하늘·땅(一)의 뜻에 백성이 맞추어 걸음(止지) 걷게 함이 정치(一止攵⇒政)이며, 아이(子)들이 서로 손 맞잡고 사귀도록(爻효) 함이 가르침(爻子攵⇒敎)이다. 어느 경우이나 머리(首수) 즉, 어른이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어른은 길을 잘못 들고 있지나 않은지 물어보며 쉬엄쉬엄 가야한다(辶착). 이것이 공자가 평생 동안 얻고자 했었던 도(首辶⇒道)이다.
날 비롯하여(自) 하늘·땅 뜻 닿아(至)
끝내 ‘그렇게 됐구나 끄덕이면서(然)’
이 한 표(票)로 길 찾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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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