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전 일본 여행잡지에 실린 '제주섬'
87년 전 일본 여행잡지에 실린 '제주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2.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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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旅)’ 1935년 7월호
여행(旅) 1935년 7월호 목차.
여행(旅) 1935년 7월호 목차.

오래되고 조금은 특이한 것들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제법 모으기는 했지만, 너무 게으른 탓에 제대로 정리도 안하고 그냥 방치해 둔 자료들이 한 방 가득이다. 지금은 창고로 쓰고 있는 초창기 때의 책방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자료 더미나 박스를 하나 열고, 아 이놈은 언제 만났었지, 저놈은 어디서 인연을 맺었지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것도 그 때뿐 다시 박스를 봉하고 나면 곧 잊는다.

세월이 좀 지난 자료를 찾는 고객의 의뢰를 받고서야 그 동안 한 구석에 쌓아 놓기만 하고 등한시했던 놈들을 들추다 보면 그 자료를 매입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귀물(貴物)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그 귀물이라는 것은 그저 경제적인 면이 아니라, 그 자료가 품고 있는 자료적 가치가 귀하다는 뜻이다.

그저 좋아해서 보존만 했지 그 자료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발현할 수 없도록 방치했던 나는 어찌 보면 그 자료에겐 죄인이었다. 이젠 나보다 훨씬 더 너를 아껴줄 분에게 시집 보내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이별이라는 서운함보다는 그간의 미안했던 마음속 짐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부턴 사랑만 받기를 빌며...

표지.
표지.

오늘은 빨래터의 조선 아낙네들을 채색화로 그린 화가 하다케야마 긴세이(畠山錦成)의 표지화에 이끌려 골랐었던 잡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1924년 창간되어 일본 여행정보지로서 최고의 역사를 가진 잡지인 ‘여행(旅)’ 1935년 7월호이다. 이 책의 표지에 실린 그림에 끌렸던 책이지만 이 잡지의 진정한 가치는 당시의 조선을 알 수 있는 ‘조선 풍물 특집호’라는 데 있다.

특집호답게 맨 앞에는 조선의 곳곳을 촬영한 사진을 10쪽에 걸쳐 싣고, 조선의 관찰점·금강산 만이천봉·백의(白衣)의 조선을 가다·조선에 이것이 없다·남선(南鮮) 5일 여행·조선여행안내 등 조선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이 수록된 잡지로, 당시에도 유명했던 조선의 무용가 최승희가 쓴 ‘조선을 위해 좋은 무용을’과 조선의 1세대 여류비행사 가운데 하나인 이정희의 ‘고향을 하늘에서’도 게재되어 있어 가치를 더 한다.

이 잡지에는 제주에 관한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먼저 화가 쯔루타 고로(鶴田吾郞)가 쓴 ‘제주도란 어떤 곳’이 한라산 드로잉과 함께 수록되었고, 좌담회 ‘조선을 말하다’에서는 제주도의 풍속과 자연환경·제주도 남자의 행복·해녀와 야생마 등에 관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좌담록에는 중국 따리엔(大連)행 여객선을 제주에 잠시 기항시키면 좋을 것이라는 제안(鶴田)과 제주의 삼다(三多)를 소개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람’ 대신 ‘파리(蠅)’를 꼽으며 그 근거로 조선 도처에 있는 ‘읍사(邑史)’를 들고 있어(和田一郎) 주목되며, 또한 ‘조선의 진미’편에서는 갈비 등과 함께 제주의 ‘멜젓’(鰮の塩辛)을 소개하고, ‘여행뉴스’코너에는 그 해 4월 1일부터 격일로 목포에서 제주까지 왕복하는 정기 여객선이 시작되었음을 운행시간표와 함께 전하고 있다.

좌담회에서 차 안에서의 도덕을 논하면서 ‘오히려 내지인(日本人)보다 예의가 바르다’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의 나라 화가 쯔루타 고로의 진심어린 평가가 새삼스러운 오늘이다.

여행(旅) 1935년 7월호(일본여행구락부) 中 쯔루타 고로(鶴田吾郞)의 글 _제주도란 어떤 곳_과 제주도 한라산 드로잉 부분.
여행(旅) 1935년 7월호(일본여행구락부) 中 쯔루타 고로(鶴田吾郞)의 글 _제주도란 어떤 곳_과 제주도 한라산 드로잉 부분.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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