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역사문화의 보고 고산리를 위하여
제주 역사문화의 보고 고산리를 위하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2.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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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

당산봉·수월봉·차귀도·고산평야·자구내 등이 있는 고산리는 탐라15현 중 차귀현이 있던 지역이다. 차귀라는 지명은 탐라의 수맥과 지맥을 끊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호종단을 한라산신이 막았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고려 시대 이 지역은 몽고의 탐라목장 중 서아막이 있던 곳이다. 1374년 최영 장군 부대가 진압한 목호와의 난은 서아막의 목호가 주도적으로 일으켰다. 조선 시대에는 진상용 마소를 키우는 모동장(毛洞場)이 녹남봉(신도)과 돈두악(영락)을 에워싼 차귀평에 조성되었다.

특히 탐라지를 편찬한 이원진 목사 재임 때인 1652년 왜구의 노략질에 대비하기 위해 둘레 740여m의 차귀진성이 들어섰다. 지금도 성안으로 불리는 차귀진성은 고산리 주민들에겐 친숙한 이름이다. 당시 쌓은 성담이 1930년대 지어진 ‘고산교회’ 주변 등에 남아 있음이 그나마 다행이다. 성굽돌을 준거로 동문과 서문을 비롯한 성담 일부라도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45만년 전 바다에서 솟아난 당산봉에는 제주도 3대 국당으로 알려진 차귀당과 방어유적인 당산봉수가 있었다. 탐라순력도 등의 고지도에는 78m 높이의 낮은 언덕인 수월봉을 고산(高山)으로, 자구내포구를 사귀포(蛇鬼浦)로 표기하고 있다. 사귀포는 오래전 차귀당에 뱀신을 모셨던 데서 유래한 듯하다.

1만8000년 전 역시 바다에서 솟아난 수월봉의 분화구는 차귀도와 ‘엉알’ 사이의 바다 속에 잠겨있다 한다. 엉알의 화산체와 ‘자구내 뜬밭’에서 출토된 신석기 유물로 인해 이 일대는 1998년 고산리선사유적지로, 2000년 차귀도천연보호구역으로, 2009년 수월봉화산쇄설층으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수월이와 녹고 남매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수월봉에는 제주도에선 유일한(?) 영산비 제단이 새로 마련되었다. 1757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산비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가 1984년 고산리 주민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현재 마을 사무소에 있는 영산비를 원래 있던 곳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마모된 비에는 ‘이곳은 영산이므로 경작을 금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산리 주변에는 또한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고부이씨 입도조인 이세번의 묘와 평택임씨 입도조인 임구(정산현감 지냄)의 묘, 절부암(지방기념물) 고씨의 묘 등이다. 의금부도사였던 이세번은 기묘사화로 사사된 조광조와 김정 등의 무죄를 청원하다 1522년 이곳에 유배되었다. 임형수 제주목사의 아들인 임구는 당산봉 풍광에 매료된 부친의 유훈으로 제주에 와서 살다 당산봉에 묻혔다. 절부 고씨 부부의 묘는 당산봉 차귀당 근처에 있으며 제주판관과 대정현감을 지낸 신재호(신촌리 출신)가 1867년 용수리 해안 엉덕동산에 절부암이란 제명을 암각하게 하고 절부 고씨의 합장 무덤에도 표절비를 세웠다. 

탐라순력도에는 당산봉 해안을 저생문(這生門)으로 표기하고 있다. 해변 절벽에 형성된 해식동굴인 저생문(저승문)은 끝닿는 데를 모를 정도로 길고 음산하단다. 저생문 위의 바위는 가마우지 새들이 남긴 변으로 하얀색으로 변해 있다. 이 또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볼거리이다. 당산봉 해안에 감추어진 듯 있는 저생문 주변의 ‘생이기정’ 둘레길을 걷다 보면 이곳이 곧 별천지임을 실감한다.

고산리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옛 등대인 도대불과 도요지인 노랑굴도 있고, 차귀도에는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 장군바위도 있다. 태풍의 길목으로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수월봉에는 기상대도 있고, 자구내 근처엔 유적센터도 있다. 이곳에는 또한 일제가 해안에 파헤친 갱도와 참호도 있다. 미군에 맞서 바다로 돌격하는 자살특공 보트와 탄약을 감추고 지휘했던 곳이다. 

이렇듯 다양한 볼거리와 다양한 역사문화를 품고 있는 천년의 고을 고산리를 어떻게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지를 이제 제주도가 고민해야 할 때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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