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움직여도 좋다
느리게 움직여도 좋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2.01.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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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기지개를 켜며 생동감을 느낀다. 창문 너머에는 자연의 소리 요란하다. 시작을 알리는 육 ‧ 해 ‧ 공의 오케스트라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것이냐 호통의 소리 같기도 하다. 용수철처럼 박차고 일어나 무작정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없다.
  
가다가 길이 막혀 방향을 바꾸자 파헤쳐놓은 비포장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연이어 흙구름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살살 지나가면 좋겠는데 어찌 저리 무법자처럼 달릴까. 항파두리 토성 위에 재를 뿌려놓고 빗자루 들고 말을 달렸다는 삼별초 군사의 기세 못지않다. 거울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미간이 늙은 호박처럼 파이는 순간이다. 정겹게 꼬부라진 길이었는데, 현대인의 통념이 ‘편리’라는 명분을 부추기고 있는가.  

짜증의 도가니를 빠져나오니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체증을 날려버릴 듯한 바람은 마셨던 흙먼지를 말끔하게 씻어 주는 듯하다. 닳아지지 않을 천연 미네랄 비누로 전신 마사지를 하니 고급 스파숍이 부럽지 않다. 오늘은 걷고 쉬며 여유를 누려보자. 구부러진 해안선은 수채화 풍경 같다. 파도는 나를 향해 열강을 토해낸다. ‘빠른 길이 다 좋은 건 아니야, 꾸불꾸불한 것도 느린 것도 매력이 넘친다고!’  

게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옆으로 움직이는 바닷게를 보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름대로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하여 움직이는 모습이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바로 기어가든 옆으로 기어가든 무슨 상관이냐. 보란 듯이 움직일 뿐이다. 멈추는 순간 생은 끝난다. 게는 그걸 아는 천재 같다. 덥석 잡혀 해물탕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제주어의 ‘오몽ㅎ+아래아다’는 말이 떠오른다. 움직이지 않고 살 방법이 어디 있던가.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 오몽ㅎ+아래아지 말라고 한다면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일어나지도 못하던 어머니가 일어나 앉기만 하더니 일어서서 발을 옮겼다. 화장실까지도 걸었다고 목소리가 커졌다. 불과 오륙 미터 거리지만 움직여서 얻어진 성취감을 무엇에 비유할까. ‘오몽’해서 일으킨 기적이었다. 불편한 모습이 애처롭지만, 응원의 말 덧붙인다. ‘오몽해사 삽니다, 계속 오몽ㅎ+아래아+ㅂ써양!’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과 함께 일어나는 생명체의 의지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미물이라 칭하는 생명도 꼬물거린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까지 세상에 나와 춤을 추고 있다. 같이 살겠다는 심사다. 인간 삶을 옥죄는 바이러스 따위 없는 세상이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방역으로 맞설 수밖에, 오늘은 3차 접종하러 가야할까 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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